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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만 한 채, 세금 낼 돈 없으면 팔아라? "다 올랐는데 이 나이에 어디로"

입력
2021.01.05 04:30
수정
2021.01.05 15:0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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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도 없는 2030, 집만 있는 6070

편집자주

2030·6070세대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청년·노년을 사는 첫 세대다. 일자리·주거·복지에서 소외를 겪으면서도 ‘싸가지’와 ‘꼰대’라는 지적만 받을 뿐, 주류인 4050세대에 치여 주변부로 내밀린다. 세대간 공정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외침이다.

2020년 12월 17일 우수옥(64)씨가 올해 1기분 재산세 고지서를 설명하고 있다. 남편과 공동명의로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우씨는 올해 재산세가 작년보다 30만원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2020년 12월 17일 우수옥(64)씨가 올해 1기분 재산세 고지서를 설명하고 있다. 남편과 공동명의로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우씨는 올해 재산세가 작년보다 30만원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집값이 많이 오른 건 맞아요. 그런데 이 나이에 살던 곳을 떠날 순 없잖아요. 소득은 그대론데 집값 때문에 세금만 늘었으니, 좋아진 게 하나도 없는 거죠."

우수옥(65)씨는 서울 영등포구 34평 아파트를 2017년 7억원에 샀다. 지금은 실거래가 13억 5,000만원을 기록하며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로또를 맞은 듯 벼락 부자가 됐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씨 얼굴에선 웃음기를 찾기 어려웠다. 공시지가 현실화에 우씨의 집도 9억원 이상 고가주택으로 분류되며 세금 부담이 갑자기 커졌다.

1주택자인 우씨에게 집은 자산이 아닌 주거지일 뿐이지만, 집값이 갑자기 치솟으며 안 그래도 부족한 유동성(현금)이 더 고갈됐다. 남편의 공무원 연금과 우씨의 국민연금을 합하면 매달 수입은 200만원. 적자가 나진 않지만, 남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설상가상 뇌경색 투병 중인 남편 병원비와 약값에 매달 50만원씩 추가 비용이 든다. 우씨가 종종 교회에 나가 강의로 수입을 보태기도 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 또한 끊겼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과 공동명의인 아파트 재산세는 작년보다 30만원이 늘었다. 우씨는 차라리 집을 팔고, 평수를 줄여 이사해 여유 자금을 마련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값이 다 올랐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살던 근거지를 버리고 아예 지방으로 가는 게 맞는 일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6070 현주소 '하우스 리치, 캐시 푸어'

자산과 소득의 불균형 탓에 위기를 맞은 6070의 사연은 우씨 부부 말고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가 10억원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당장 쓸 현금이 없는 '가난한 부자'들. 하우스 리치, 캐시 푸어(House Rich, Cash Poor)는 많은 6070의 현주소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고령자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78.1%에 달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고 저축 비중은 15.5%로 전 세대 중 가장 낮았다. 쉽게 말해 현금 동원력이 가장 부족해, 집 하나 빼면 남는 게 없는 세대라는 뜻이다.

부동산이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통계청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이렇듯 유동성 낮은 부동산 위주 자산으로 구성된 6070의 살림은 빠듯하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공적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노년층 비율은 50.9%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남성 71.0%, 여성 35.9%로 여성 노인의 연급 수급률은 매우 저조하고, 80세 이상의 연급 수급률은 26.1%에 그친다.

연금을 받아도 액수는 충분치 않다. 노령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53만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국민연금이 1988년에서야 도입돼 가입 기간이 짧은 이들의 경우 30만~40만원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기초연금 30만원 정도를 더하면 연금 수입은 월 60만~70만원 수준인 셈이다.

지방의 30평대 단독주택에서 사는 1주택자 조복녀(65)·신동하(67)씨 부부는 각기 월 46만원, 37만원의 노령연금을 받는다. 자녀에게 받는 월 30만원 용돈을 합하면 110만원 정도로 두 사람의 식비와 난방비만으로도 빠듯한데, 재산세가 연 100만원씩 나온다. 여기에 신씨가 뇌경색을 앓으면서 검사비와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었다.

2020년 12월 28일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6070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태경 기자

2020년 12월 28일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6070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태경 기자


6070 "소득이 충분치 않으니 집값 상승도 무의미"

6070들은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은 늘고, 달랑 하나 가진 자산인 주택마저 세부담이 늘면서 부담감이 가중됐다고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 33평 아파트에 사는 정모(74)씨는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평생 전세살이 하던 정씨가 5년 전 6억7,000만원에 매입한 집은 현재 실거래가 1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년 전 150만원이었던 재산세는 지난해 320만원으로, 월 26만원이었던 건강보험료도 아파트 가격에 연동해 43만원으로 뛰었다. 작년부터는 재산세와 별도로 종합부동산세가 50만원씩 나오기 시작했다.

정씨의 공무원 연금에 기대 살던 부부는 갑자기 커진 세금 지출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정씨는 "남편이 전립선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목돈이 없어 한 달에 한 번 주사만 맞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은 6070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지만, 이제 이 분신이 말년의 삶을 옥죄는 격이다.

6070의 이런 현실을 두고 수도권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1주택자 조영애(62)씨는 '집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조씨는 "소득이 받쳐주지 않으면 집 한 채 있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살았지만 집값이 오르면서 어느 날 보니 계층이 추락한 느낌"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는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집을 소득으로 보는 것(자산의 소득 환산)은 문제"라며 "일을 안 하는데도 집값 때문에 갑자기 자녀의 부양가족에서 해제돼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았다고 상담해 온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6070에게 집은 명함이고 자신의 얼굴인데 이들에게 평생 살던 집을 팔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얘기"라며 "지금까지의 삶의 흔적을 흔들면 노년층의 분노가 표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유지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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