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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문 뚫으니 내집 마련 '미션 임파서블'...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해"

입력
2021.01.04 22:00
8면
0 0

<2>집도 없는 2030, 집만 있는 6070

편집자주

2030·6070세대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청년·노년을 사는 첫 세대다. 일자리·주거·복지에서 소외를 겪으면서도 ‘싸가지’와 ‘꼰대’라는 지적만 받을 뿐, 주류인 4050세대에 치여 주변부로 내밀린다. 세대간 공정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외침이다.

안정적인 주거를 꿈꾸는 30대 청년이 월급을 모아선 살 수 없는 수준으로 껑충 뛰어버린 동네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안정적인 주거를 꿈꾸는 30대 청년이 월급을 모아선 살 수 없는 수준으로 껑충 뛰어버린 동네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요즘 서울에 10억원 이하 아파트가 없잖아요. 저 정년까지 10억원 모을 수 있을까요. 모아도 그때는 더 올라 있지 않을까요."

3년차 직장인 김정원(가명·31)씨의 머릿 속엔 요즘 집 걱정이 가득하다. 대학 졸업 후 학사장교를 거쳐 힘들게 직장을 얻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아끼고 아껴가며 한 달에 180만원 정도를 모으지만, 이 속도로 모아 봐야 40대가 돼서 서울이나 주요 신도시 아파트를 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목돈 마련하는 사이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아 대출이라도 왕창 받아 아파트를 사보려고도 했지만, 정부가 대출을 조이고 있다는 소식에 보고 있던 부동산 앱을 미련 없이 닫아 버렸다.

"내 집? 전·월세 감당도 힘들어"

살 집을 찾던 한 20대 청년이 부동산 앞을 기웃거리며 시세를 알아보고 있다. 오지혜 기자

살 집을 찾던 한 20대 청년이 부동산 앞을 기웃거리며 시세를 알아보고 있다. 오지혜 기자

취직이라는 좁은 문을 뚫은 청년들 앞에는 보금자리 마련이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내 집 마련은 아예 포기 상태고, 전셋집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20대 후반 직장인 최모씨는 회사 일로 정신이 없을 때 자취방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와 울며 겨자먹기로 재계약을 택했다. 최씨는 "월세 부담이 커 전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사정에 맞는 전셋집을 찾으려면 직장에서 너무 멀리 이동해야 했다"며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는데 발품 팔 시간이 부족해 결국 월세 재계약을 하고 말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력으로 집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지자, 부모 품에서 가능하면 오래 살면서 주거 독립을 미루려는 청년들이 늘었다.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9월 성인남녀 4,068명을 상대로 캥거루족(부모에게 생계 등을 의존하는 젊은이)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70.9%가 부모에게 가장 많이 의지하는 부분을 '주거'로 꼽았다.

직장인 한모(26)씨에게도 캥거루족 생활은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는 "부모님 집을 나가 자취방을 구해 봤자 지금보다 더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며 "가능하면 부모님 집에서 오래 살고 싶은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봉상승 비웃는 집값 상승률에 불안

'미쳤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청년들의 주거 불안은 당장의 걱정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직장생활을 하며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한국부동산원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9세 미만 2인 가구가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기간(평균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5년으로 조사됐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월급 절반을 저축해도 30년이 걸리는 셈이다. PIR은 2017년 6월 조사에선 11년이었지만 금세 4년이나 늘었다.

20대 청년이 값이 껑충 뛴 아파트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있다. 오지혜 기자

20대 청년이 값이 껑충 뛴 아파트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있다. 오지혜 기자

부모님 찬스(증여 혹은 대여)를 쓰지 않으면 도무지 집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 내 집 마련 자체를 애당초 포기한 청년들도 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직장인 박모(28)씨는 "로또나 주식으로 한 방에 큰돈을 벌지 않는 이상 내 집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집을 소유한다는 욕심 자체를 내려놓는 편이 더 마음 편하다"고 했다.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연봉을 모아 집을 사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택 가격 상승률이 연봉 상승률을 압도하고 있다"며 "공급량까지 줄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집 사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주거 불안은 만혼 혹은 비혼으로 이어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두지 않으려는 현상에도 주거 문제가 큰 이유로 자리잡고 있다.

불안감에 영끌 했는데... 이자도 만만찮다

불안감을 견디다 못해 '있는 돈 없는 돈'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영끌 대출'로 집을 사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가구 부채는 평균 1억82만원으로, 2019년보다 13.1% 증가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불안감을 느낀 30대가 대거 패닉바잉(향후 가격 상승 및 물량 감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무작정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집을 구매해 안정감은 찾았을지 몰라도, 이자 부담이란 또 다른 짐을 떠안았다. 전문직 종사자 김모(32)씨는 지난해 9월 7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했다. 안 입고, 안 먹어가며 열심히 모은 1억원에, 주택담보대출로 4억 9,000만원, 신용대출 1억 1,000여만원으로 집값을 충당했다. 매월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이 170여만원이다. 결국 김씨는 출산을 포기했다. 그는 "원리금 상환을 오랜 기간 계속해야 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교육비 등으로 지출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커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직장생활하며 모은 6억원에 신용대출, 담보대출을 모아 15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한 30대 후반 직장인 서모씨는 원리금 상환(월 300만원)에 쪼들려야 하지만, 마음의 큰 짐은 덜었다고 했다. 서씨는 "당장은 고생해도, 이사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고, 삶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은 취업과 주거라는 '미션 임파서블'을 연달아 수행해야 하는 자신들을 '저주받은 세대'로 칭했다. 자신들을 이런 상황으로 내몬 사회, 부동산 자산을 선점한 선배 세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김정원씨는 "나를 비롯한 이 시대 청년들의 욕심은 소박하다"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 한 채만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지금의 불안감은 물론 앞으로 박탈감까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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