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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남편 잃은 '분노의 추격자', 참혹한 식민지배 현실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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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남편 잃은 '분노의 추격자', 참혹한 식민지배 현실과 마주하다

입력
2020.12.30 15:21
수정
2020.12.30 18:23
21면
0 0

30일 개봉 호주 영화 '나이팅게일'

남편과 딸을 잃었다. 분노가 들끓는다. 도울 사람은 없다. 클레어는 복수에 나선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남편과 딸을 잃었다. 분노가 들끓는다. 도울 사람은 없다. 클레어는 복수에 나선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눈앞에서 남편과 아기를 잃는다. 게다가 끔찍한 폭행까지 당한다. 범인은 영국군 장교다. 죄수였던 여인의 약점을 악용해 여인을 노리개 취급했던 인물이다. 장교는 진급을 위해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여인은 헌병대를 찾아가 장교의 죄상을 고발하나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분노를 제어할 수 없던 여인은 직접 단죄에 나선다. 호주 영화 '나이팅게일'의 이야기 줄기다.

여인 클레어(아이슬링 프란쵸시)는 분노를 에너지 삼아 맹렬한 추격전을 펼치고 싶은데 현실은 간단치 않다. 영화의 시공간은 1825년 영국이 식민지배하던 호주 태즈메이니아. 추격의 길은 위험천만하다. 클레어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통행증이 없고, 연약하다. 길 안내를 맡긴 생면부지 원주민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 역시 경계의 대상이다. 식민지군과 원주민이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라 길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 악인이다. 행여 선한 이를 만난다 해도 ‘여행의 목적’을 밝히며 도움을 청할 수 없기도 하다. 권력과 완력을 지닌 원수 호킨스(샘 클라플린) 중위를 뒤쫓기 바쁜데 장애물만 잔뜩 놓여있다.

클레어와 그의 길 안내를 돕는 빌리. 두 사람은 복수의 여정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클레어와 그의 길 안내를 돕는 빌리. 두 사람은 복수의 여정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클레어는 복수를 위한 여정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현실을 알아간다. 백인들에게 터전에서 쫓겨나고, 착취 당하는 원주민의 비참한 현실을 빌리를 통해 깨닫는다. 빌리 역시 클레어의 처지에 동병상련하고 그를 도우려 한다. 클레어의 복수는 빌리의 복수가 된다. 한 사람은 영국인에게 핍박 받는 아일랜드인이고, 또 한 사람은 백인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에보리진이기에 가능한 인연이다. 요컨대 영화는 외견상 복수극이지만 실제로는 두 약자의 연대기이며, 추악한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폭로극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클레어는 호킨스 중위를 향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주인이야”라고 절규한다. 순종적이고 노래 잘하고 누군가에게 구속된 ‘나이팅게일’(호킨스가 클레어에게 붙인 별명)이 아닌, 그저 독립된 한 인간이라는 선언이다. 이는 곧 아일랜드인으로서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겠다는 외침이자,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폭압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클레어의 저 말은 빌리의 마음을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호킨스(오른쪽) 중위는 악인이다. 잔인하고 교활하고 폭력적이다. 그의 권력과 완력은 영국군 중위라는 계급에서 비롯된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호킨스(오른쪽) 중위는 악인이다. 잔인하고 교활하고 폭력적이다. 그의 권력과 완력은 영국군 중위라는 계급에서 비롯된다. 조이앤시네마 제공


초반부터 잔혹한 장면이 등장한다.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고 싶어진다. 관객을 19세기 호주로 끌고 들어가, 역사에 감춰졌던 폭력과 야만성을 지켜보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복수의 쾌감을 앞세운 장르 영화라기보다, 사실주의 시대극에 가깝다. 호주의 역사책을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데뷔작인 공포영화 ‘바바둑’(2014)으로 주목 받은 제니퍼 켄트 감독이 연출했다. 켄트 감독은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있었는지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연출 제안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 영화의 메가폰을 든 이유다.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30일 개봉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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