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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욕조서 숨진 7세 딸… 살해 혐의 아버지, 2심서 '무죄 반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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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욕조서 숨진 7세 딸… 살해 혐의 아버지, 2심서 '무죄 반전' 이유는

입력
2020.12.29 23:00
수정
2020.12.29 23:1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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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닥터! 닥터!”

지난해 8월 8일 오전 1시 45분. 서울의 한 호텔 프론트로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의사를 찾는 객실 전화가 걸려왔다. 10여분 뒤 바로 119 응급대원들이 방에 도착했지만, 응급처치가 필요했던 7세 여자아이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신고전화를 걸었던 ‘최초 목격자’인 아버지 A(41)씨는 "방을 나올 때만 해도 딸아이가 잠들어 있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욕조 안에 떠있었다"고 진술했다.

의문사로 기록될 뻔한 사건이었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A씨. 1심 법원은 그가 친딸을 욕조 안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고 보고 징역 2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최근 2심에서 A씨가 무죄를 선고받는 반전이 일어났다. 다소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지만, 딸의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2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중국인 A씨는 주변에서 보기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그는 2017년 5월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B(사망 당시 7세)양을 뒀는데, 이혼 후에도 주말마다 딸을 부모님 집으로 데려와 놀아주거나 중국·마카오 등으로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사건 발생 후에도 친모가 “A씨가 평소에 딸에게 너무 잘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A씨를 믿는다”며 무죄를 호소할 정도였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둘씩 드러났다. 결정적인 것은 A씨와 여자친구 C씨 사이의 문자 메시지 내용이었다. A씨는 이혼한 그해 여름부터 C씨를 만나서 동거해왔다. 그런데 갈수록 C씨는 B양을 ‘마귀’ ‘원수’라고 부르며 극도의 증오감을 드러냈고, 자신이 두 차례 유산하자 “B양이 재수가 없어서 우리 아이를 잡아먹었다”며 까닭 없이 B양을 탓하기도 했다.

특히 B양이 사망하기 전날, A씨와 C씨가 주고받은 문자가 유력한 ‘살해 모의 정황’으로 부각됐다. 중국에 살던 부녀는 B양의 ‘한중교류 문화공연’ 참여를 위해 지난해 8월 6일 한국에 입국한 상황이었다. 이튿날 저녁 딸과 함께 한강유람선에 오른 A씨는 C씨에게 “오늘 저녁 호텔 도착 전에 필히 성공한다”고 문자를 보낸다. 검찰에서 A씨는 ‘C씨가 딸을 강에 던져버리라고 하기에, 달래주는 차원에서 말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이를 번복했다.

부녀는 유람선에서 내린 뒤 자정 무렵 호텔로 돌아왔다. 폐쇄회로(CC)TV로는 A씨가 8월 8일 0시42분 홀로 맥주를 들고 호텔방을 나와, 1시간쯤 뒤 돌아올 때까지 A씨 외에는 객실에 출입한 사람이 없다는 점도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했다. 경찰은 B양에게 골절 등 외상은 없지만, 입안 점막 등 신체 곳곳에서 발견된 ‘점 출혈’에 비춰볼 때 B양이 익사 및 질식사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여러 정황상 A씨가 범인일 수밖에 없다며 그를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소견을 의뢰한 법의학자들이 모두 익사에 더해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를 피해자 사인으로 판단했다”며 A씨의 살해 혐의를 인정했다. 또 A씨가 딸 살해를 요구하는 C씨에게 보낸 문자에 대해서 “C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동조하는 척 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은 “B양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윤강열)는 △A씨에게 뚜렷한 범행 동기가 없는 점 △사건 직후 현장에서 A씨 모습이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점 △B양이 사고로 욕조에서 미끄러져 목이 접히며 질식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C씨가 부녀가 자주 만나는 것에 불만을 표했어도, 그것이 친딸을 살해할 동기로까지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딸에 대한 증오감을 표출하는 C씨에 대해 “네(C)가 말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 “내가 걔(B양)를 버릴 수는 없잖아. 최소한의 책임은 다해야지”라는 등의 문자를 보낸 정황도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구급대원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사건 직후 계속 벽을 치면서 통곡하기도 했다.

아울러 법의학적인 판단 결과, 재판부는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A씨가 B양을 목 졸라 살해했다면, B양 몸에서 담갈색의 손톱자국 등이 발견됐어야 하는데 이러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심폐소생술로 인해 B양 몸에 점 출혈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B양이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지면서 욕조 물에 코와 입이 막히고, 목이 접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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