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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입력
2020.12.30 04:30
수정
2020.12.30 13:5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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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지난 6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문학평론가 김현은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고 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권위주의는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는 동어반복 식 명제에 다름 아니다는 게 그의 통찰이다.(‘행복한 책 읽기’)

언제부터인가 문재인 정부의 화법도 동어반복의 세계에 갇힌 모습이다. 촛불로 탄생한 정의로운 정권이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옳고, 너희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 반대편을 수구기득권, 친일, 적폐 세력으로 낙인 찍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견이 조정되는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려진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한 법원의 효력 정지 결정은 한마디로 징계 사유도, 절차도 함량 미달이라는 취지다.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사과했으니 검찰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했던 여권으로선 총체적 실패다. 하지만 지금 여권 내에선 법치주의 무시에 대한 반성과 쇄신은 찾기 어렵다. 대신 이왕 검찰 조직에 손을 댄 이상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아예 목숨줄을 끊어놓자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혁명 시기도 아니고 국가대계인 형사사법시스템을 개조하겠다고 하루아침에 뚝딱 내놓은 법안을 믿어도 될지 의문이다. 법원 결정을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며 사법부마저 손 보겠다고 벼르는 이들 아닌가.

동어반복의 세계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민심과 동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나 정보를 접하더라도 외면하는 심각한 자폐성 때문이다. 2개월 정직도 무리라는데 한술 더 떠 검찰총장 탄핵을 추진하자는 강경파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한 친문 의원은 지금 상황을 ‘수구카르텔 대 민주진영 간 최후의 일전’으로 규정하며 “여기서 밀려나면 언론은 주권자 시민의 눈을 가리고, 검찰은 민주진영을 난도질할 것이며, 법원은 최후의 합법 도장을 마구 찍어댈 것이다”고 주장했다. 총선에 압승하고 사법부 권력 교체까지 마친 집권 4년 차 정부의 음모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코로나19 백신 확보 지연 비판에 대처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비판을 ‘백신의 정치화’로 몰아세우는 모습에서 자신의 오류는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는 권위주의가 아른거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과 생업을 포기한 채 백신만 기다리던 국민의 실망감을 헤아린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우리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선악 이분법의 폐해다. ‘야당 비토권’ 약속을 뒤집은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에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평생 독재의 꿀을 빨았던 자들’이라고 호통친 것도 결국 이런 대결적 세계관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취임 1년이 지나고도 70%를 넘겼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집권 5년차 진입을 얼마 두지 않은 지금은 30%대로 주저 앉았다. 되돌아보면 야당이 잘해서, 민심이 변덕을 부려서가 아니다. 원인은 여권 내부에 있었다. 피아를 구분하는 대결적 진영 논리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던 취임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영화 뉴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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