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강화로 '관리물가` 크게 하락해 착시
관리물가 뺀 소비자 물가상승률? EU보다 높아
마트에 가면 배춧값도, 돼지고기 가격도 훌쩍 비싸져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식당에선 메뉴 가격을 올리고, 주택 가격은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아 체감 물가상승률과 딴판인 경우가 많다. 괴리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복지정책 강화가 물가 흐름 파악 어렵게 만들어
한국은행 조사국이 29일 발표한 '최근 관리물가 동향 및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관리물가 상승률은 올해 하반기 -2.7%를 기록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관리물가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가격 수준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교육비와 의료비, 통신비, 에너지 비용 등이다. 즉 관리물가가 하락했다는 것은 정부가 해당 분야 복지정책을 강화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고교 무상교육 및 무상급식을 확대 시행하고 있으며, 자기공명영상(MRI) 및 초음파 검사에도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건강보험 보장성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통해 사실상 전 국민에게 이동통신 요금을 지원함으로써 물가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통신비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으로 도시가스 요금과 지역 난방비가 상당히 저렴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지원정책은 오히려 물가 변동을 정확히 분석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 중에서 관리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웃돌아 스위스 다음으로 높다. 이 때문에 올해처럼 관리물가가 크게 하락할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가 상당히 낮게 측정될 수밖에 없다. 올해 4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대부분 0%대나 마이너스로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뜻이다.
이병록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과장은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나라는 교육과 의료, 통신 관련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관리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실제 물가 흐름 판단이 교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韓, 관리물가 제외하면 주요국 중 물가상승률 높은 편
2017년 말 대비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유럽연합(EU)의 평균(3.2%)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관리물가의 '착시 현상'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소비자물가에 끼치는 영향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편인 만큼, 관리물가를 제외하고 봐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을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관리물가를 제외한 나머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우리나라가 4.0%로, EU 평균(2.8%)을 크게 웃돌았다. 일본의 경우 관리물가를 제외하고 봐도 3년간 물가상승률이 0%대에 머물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식료품과 보건, 주거 지출이 늘어난 반면 숙박과 여행, 항공 등 서비스 관련 지출은 크게 감소했다는 점도 체감 물가와의 괴리에 한몫한다. 실제로 한은이 코로나19 이후 소비지출구조 변화를 반영해 물가상승률을 추정한 결과, 체감 물가 상승률이 지표물가 상승률보다 0.2~0.6%가량 높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였어도 체감으로는 1%가 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관리물가 하락폭이 작아지면서 괴리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확산 대책으로 제공됐던 단발성 보편복지 정책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내년에도 의료 관련 복지 정책 강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관리물가가 낮아지는 현상이 이어지겠지만, 그 영향은 교육과 통신 관련 정책이 끼치던 올해보다는 적을 것"이라며 "2022년쯤엔 관리물가 상승률이 4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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