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野 협상 이끈 '충복' 재무장관 공개 폄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색 ‘마가’(MAGA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27일 휴가지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트럼프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로이터 연합뉴스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하고 무차별한 막판 몽니에 미국이 괴롭다.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을 잃은 이들의 생계비가 끊길 지경이고, 4년간 곁을 지킨 ‘충복’ 관료는 망신을 당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연말연시를 보내기 위해 23일 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간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도 인근 골프장을 찾았다. 그는 성탄절 이브인 24일과 당일인 25일에도 골프를 쳤다고 한다.
아직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의 경제적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미 의회가 통과시킨 2조3,000억달러(약 2,540조원)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안과 2021회계연도 예산안에 서명하지 않은 상태다.
그가 보유한 권한만큼 파장도 만만치 않다. 당장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실업자들을 위한 추가 보호 조치가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지연으로 시한이 연장되지 않으면서다.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인 올해 2월만 해도 1969년 이후 최저치(3.5%)로 내려갔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달 기준으로 6.7%까지 올라갔다.
미국이 실업자를 돕기 위해 마련한 사회안전망은 통상적 실업 급여 외에 두 가지다. 우선 올 3월 2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키며 실업 수당 대상이 아니던 프리랜서와 임시 노동자, 자영업자 등에게 혜택을 주는 실업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혜택의 마감 시한이 26일이었다.
더불어 긴급 실업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주 정부의 자금이 부족할 때 연방정부가 13주간 추가로 보조하는 정책도 마련했는데, 이 조항의 시한은 이달 말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이들이 1,400만명에 이른다는 게 외신들 보도이고, 이 두 지원책 시한을 11주간 연장한다는 내용이 의회가 마련한 법안에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곤란하게 만든 사람은 국민뿐 아니다. 미 의회가 약 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키고 하루 뒤인 22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축하했다. 대부분 국민에게 600달러(66만원)를 지급한다는 자신의 제안이 몇 개월간의 험난한 협상을 통해 관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영상을 올리고 의회를 통과한 경기부양안을 ‘수치’라 부르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600달러를 2,000달러(220만원)로 올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므누신 장관은 황당했을 법한 얘기다. 부양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민주당의 압력을 어렵게 막아내고 거둔 합의를 자신이 4년 동안 충성한 상관이 공개 폄하하며 망신을 줬기 때문이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마저 성탄절 직전 짐을 싼 만큼 므누신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곁에 남은 거의 유일한 측근 관료다. 임기 동안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납세 내역을 공개하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앞장서 막아 왔고 빈축을 살 만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노골적으로 두둔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므누신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줄 알았던 의원들 사이에 그의 위상이 이제 너덜너덜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대선 결과를 뒤집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양안 타결 과정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 자신이 소외된 데 대해 화가 난 상태였다고 WP는 덧붙였다. 한 소식통은 WP에 “대통령은 그저 모두에게 화가 난 것이고 의회에 가급적 많은 고통을 가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브라이언 리들은 WP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조력은 망신으로 되돌아온다”며 “이것(므누신 장관이 당한 일)이 그를 위해 일했던 많은 이들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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