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도 연말 극장가를 구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 속에서 크리스마스 연휴 박스오피스 역시 바닥 수준에 머물렀다. 재난이나 다름없는 극장가 상황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5~27일 전체 관객수는 30만8,159명이었다. 할리우드 대작 ‘원더 우먼 1984’가 21만1,536명을 모았으나 크리스마스 극장가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5일 관객수가 14만1,746명으로 지난달 29일 이후 처음 하루 관객이 10만명을 넘어선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지난해에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만 201만648명이 극장을 찾았다. 한국 영화 ‘백두산’과 ‘천문’ 등이 박스오피스를 이끌어 나온 흥행 성과였다. 올해 연말에는 한국 영화 ‘서복’과 ‘영웅’, ‘인생은 아름다워’ 등이 흥행 출사표를 던졌다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개봉을 무기 연기했다. 12월 최종 관객수는 160만명 가량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관객이 최저였던 지난 3, 4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말 극장가는 암울했던 한 해를 대변한다. 올해 극장가의 시작은 희망찼다. 지난해 관객수(2억2,667만명)와 매출(1조9,139억원)은 역대 최고였다. 2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에 올랐다. 한국 영화 붐을 기대할 수 있었다. 윤제균 감독의 ‘영웅’과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연상호 감독의 ‘반도’, 강제규 감독의 ‘보스턴 1947’,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승리호’ 등 기대작들이 많기도 했다. 2월 하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가 극장가를 덮쳤고, 박스오피스는 고꾸라졌다. ‘반도’를 제외하고 기대작들이 여름과 추석 대목에도 개봉을 피했다. 8월초 반짝 상승세가 있었으나 이후 관객수는 다시 급락했다. 27일까지 올해 전체 관객수는 5,933만4,740명이다. 지난해 관객수의 33% 정도에 불과하다.
관객 기근은 새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고, 개봉을 확정한 국내 상업영화는 아직 없다. ‘원더 우먼 1984’가 버텨주는 연말 사정이 내년 1월보다 나아 보인다. 2월 설 연휴 대목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8일 영화계에 따르면 설 연휴를 겨냥하고 있는 영화조차 아직 없다. 대작 대부분은 상황이 뚜렷이 호전되지 않는 한 개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스턴 1947’의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보스턴 1947’을 극장 개봉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강제규 감독이 연출하고 하정우, 임시완이 주연한 ‘보스턴 1947’은 제작에 190억원이 들어갔다.
코로나19 위기가 걷혀도 문제는 남아있다. 개봉을 미뤄둔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출혈 경쟁을 할 수 있어서다. 내년에는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 ‘헤어질 결심’ 등이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산’은 김한민 감독이 ‘명량’(2014) 이후 7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그린다. ‘비상선언’은 항공재난 영화로 이병헌과 송강호, 전도연, 임시완 등 출연진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와 박해일이 연기호흡을 맞춘,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다. 올해 개봉을 못한 화제작들과 제작을 막 마친 영화들이 뒤섞이면서 코로나19 이후 극장 정체 현상은 불가피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마냥 미뤄 둘 수는 없다”며 “코로나19가 해결돼도 중저예산 영화들은 개봉일을 쉽게 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