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내년 미국 골든글로브상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됐다. 미국 제작사가 만들고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미국 영화지만 한국어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할리우드에선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를 중심으로 인종차별적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연예전문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미나리’는 골든글로브상 규정에 의해 작품상 대신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분류됐다. 또 다른 미국 연예전문매체 인디와이어는 ‘미나리’의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라서 작품상 후보에선 아예 배제되고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배정됐다고 이날 전했다.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영어 대사가 50% 이하이면 외국어영화로 규정하고 있다. 스티븐 연과 윤여정, 한예리 등이 출연한 ‘미나리’는 한 한국 가족이 미국 아칸소주에 이민을 와 겪게 되는 일을 그렸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내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주요 후보작으로 꼽힌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유명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가 제작했다.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들은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부문 배정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강하게 비판했다. 영화 ‘페어웰’의 중국계 룰루 왕 감독은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는 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이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며 “오직 영어 말하기를 미국인으로 특징 짓는 오래된 규정을 진정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어 대사가 대부분인 왕 감독의 ‘페어웰’ 역시 올해 골든글로브상에서 작품상 대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배우인 대니얼 대 김은 “(외국어영화상 분류는)마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격인데, 그 나라가 실제로는 미국”이라고 일갈했다. 마블 영화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텐 링스’의 주연배우 시무 리우는 “‘미나리’는 바닥부터 삶을 구축하려는 이민 가족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무엇이 이보다 더 미국적일 수 있을까”라며 반문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은 영어 대사가 30% 가량 밖에 되지 않는데도 골든글로브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2006)은 영어 대사가 50%에 못 미치는 데도 골든글로브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평론가 겸 작가 한나 아이네스 플린트는 SNS에 글을 올리고 “이것은 인종차별주의”라며 “이 영화(‘미나리’)는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아칸소주를 배경으로 촬영됐다”고 강조했다.
골든글로브상 규정은 아카데미상과 비교된다. 아카데미상은 비영어가 대부분인 영화도 작품상 후보로 분류한다. 올해부터는 외국어영화상을 아예 없애고, 이를 대체하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새로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올해 비영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은 올해 골든글로브상 작품상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고,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내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여파로 1월에 열리던 예년과 달리 2월 28일 열린다. 최종 후보는 같은달 3일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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