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도 쉬기 어려운 한 해를 보내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고 있는 세상에서 일자리를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라고 생각했던 항공사와 여행사의 일자리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고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들은 그냥 쉬는 길을 택하고 있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늘었다. 자영업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고 늘어난 플랫폼 종사자들은 최소한의 보호를 해달라고 소리친다.
IMF 경제위기를 정책 현장에서 경험한 기억을 되살려보고는 하는데 그 당시와 비교해서 20여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생각해보면 우선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할 사회적 대화도 대화하는 형식만 남고 참여 주체들의 타협 의지가 실종되었다. 재정적으로도 고령화와 노인 빈곤화로 청년들에게 돌아갈 여력이 줄어들었다. 경제 구조도 디지털화와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생존한 기업들조차도 고용 능력이 축소되었다.
노동의 미래는 무엇인가.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현재의 혼란은 더 큰 갈등과 다툼을 증폭시킨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생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 대략적인 방향은 합의가 되어 있지만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건 진행 경로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당장 민생에 대한 긴급 재정지원을 확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전 국민 고용보험이든, 기본소득제의 도입이든 사회보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합의이지만 그런데 누가 보호의 주 대상이고 누가 다시 노동시장에 나가야 할 핵심인력인지 별 구분이 없다. 또한 성장산업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디지털화를 촉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또 다른 합의이지만 디지털화, 스마트화는 결국 일부는 승자가 되지만 그보다 많은 이가 패자가 되는 디지털 격차사회를 만들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고 디지털화를 촉진하겠다는 정책 의지만으로 답하는 건 부족하다. 그 과정에 담겨진 복잡한 이해 갈등과 여건상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경로에 대한 예측과 증거와 사실에 기반한 향후 시나리오를 객관적으로 제시한 뒤 여기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는 책임이 정부에 있다. 예컨대 고용보험을 자영업자에게도 적용할 때 충분히 보호하면서도 보험료 분담에서 형평성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 50대가 디지털화로 재무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60세 이후에는 청년들에게 역할 교대를 해주는 게 나은지도 합리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디지털 전환정책의 모범생이고 여기에 노동 4.0이라는 사회적 대화를 덧붙여 갈등을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머물지 않고 2년 전에는 정부 내에 부서를 만들어 담론을 넘어서 디지털화가 노동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전개될 시나리오들을 만들어 합리적 정책 대안을 도출하는 예견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추측이 아닌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서 노동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는 과정에는 이른바 ‘폴리시 랩’이라고 하는 유럽의 정책실험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할지 그 영향은 무엇일지에 대해 핀란드, 스위스 등이 사전 정책실험을 하고 정책을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미래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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