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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클리블랜드미술관엔 왜 고려청자가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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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클리블랜드미술관엔 왜 고려청자가 많을까

입력
2020.12.26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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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미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한국 문화재

미국 오하이오주 소재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한국 미술 소장품은 1916년 개관한 박물관의 100여년의 역사를 함께한 유서 깊은 소장품이다. 현재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한국 소장품은 현대 작품을 포함해 370여 점 정도가 있다.

청자 음각 앵무문 정병. 12세기 고려청자 정병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는 이 작품은 존 세브란스가 1921년에 미 클리블랜드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몸체에 가는 음각선으로 세 마리의 앵무새가 표현되어있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청자 음각 앵무문 정병. 12세기 고려청자 정병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는 이 작품은 존 세브란스가 1921년에 미 클리블랜드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몸체에 가는 음각선으로 세 마리의 앵무새가 표현되어있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특히 클리블랜드미술관의 고려 청자 소장품은 클리블랜드에서 일가를 세운 세브란스 가문의 인도주의적 삶을 품은 기억의 일부다. 20세기 초 한국과 클리블랜드의 각별한 인연을 상징하기도 한다. 필자가 청자 유물의 소장 경로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한 결과, 이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수의 고려 청자들은 미 클리블랜드의 사업가였던 루이스 세브란스의 주치의이자 세브란스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38년에 은퇴한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 박사가 서울에서 구매한 것이다. 이 청자들은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이었던 존 세브란스가 모두 재구입해 이후 미술관에 기증했다.

세브란스 일가는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를 통해서도 한국 문화재를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피터스 목사는 최초로 구약 시편 중 62편을 한글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출간한 인물이다. 몇 년 전 필자는 목사의 손자로부터 연락을 받아 매사추세츠에 조사를 간 적이 있다. 의과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소장자는 선교와 의료 활동을 하던 조부 피터스 목사와 제중원 의사로 활동했던 조모 에바 필드가 고종 황제에게 받은 훈장 등의 유물을 보여주며, 피터스 목사가 종종 클리브랜드에 와서 세브란스 일가를 방문, 고려시대 청자 등을 팔아 선교 활동에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위의 사실을 종합해볼 때, 고려청자 위주로 구성된 세브란스 일가의 한국 유물들은 의료 선교를 하던 그의 지인들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가 기증한 고려청자의 수준의 편차가 큰 것을 보면, 세브란스 일가는 작품 수준에 상관없이 한국에서 의료사업을 돕던 지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려청자를 구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세브란스 가의 한국 소장품은 루이스 세브란스와 존 세브란스의 인류애적 삶의 일부이자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산수화, 칠보산 그린 병풍 등도 소장

감지금자 대방광불화엄경 제78권의 변상도 부분. 비로자나불의 장엄장대 누각에 들어가기 전 미륵보살을 만나 문답하는 선재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감지금자 대방광불화엄경 제78권의 변상도 부분. 비로자나불의 장엄장대 누각에 들어가기 전 미륵보살을 만나 문답하는 선재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주요 불교 관련 유물로는 고려시대 때 제작된 오백나한도 중 하나인 ‘나한도 제464 세공양존자’, 화엄경 80권 본 중 78번째 권을 베껴 쓴 ‘감지금자 대방광불화엄경 제78권’ ‘청자음각앵무문정병’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등이 있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 내 ‘감지금자 대방광불화엄경 제78권’에 관한 논고를 담당한 김종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사경(불교 경전을 필사하는 일)에 사용된 저본이 고려의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재조대강경으로, 1340년에 초반 사경원에서 제작한 왕실 발원 사경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산시청람도. '소상팔경도' 중 안개가 걷히는 산속의 시장의 정경을 그린 작품으로, 16세기 전반의 궁중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산시청람도. '소상팔경도' 중 안개가 걷히는 산속의 시장의 정경을 그린 작품으로, 16세기 전반의 궁중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수아 학예 연구사 제공


조선 시대 화가인 김시(1524-1593)의 ‘한림제설도’ ‘설경산수도’ ‘산시청람도’ 등 조선 전기의 산수화 역시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중요 작품 중 일부다. 16세기의 산수화 발전과 전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작품들이다. ‘산시청람도’는 한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 농구단의 구단주였던 조지 건드 3세가 일본에서 구입하여 애장했던 작품이다. 장진성 서울대학교 교수는 논고에서 여덟 폭의 병풍으로 제작되었던 ‘소상팔경도’의 한 폭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를 나머지 일곱 폭을 찾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한다.

이 작품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사업'을 통해, 일본식 장황을 벗고 한국의 전통 장황으로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 작업은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맡았고, 그 과정과 결과는 보고서에 상세히 나와있다. 미술관의 웹사이트에는 이 작품과 관련된 보존?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이 공개 돼 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병풍 ‘책가도십폭병풍’과 ‘칠보산도십폭병풍’도 꼭 소개하고픈 우리 문화재 중 하나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병풍은 현재 미술관에서 구입에 주력하는 분야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열 폭 병풍인 ‘칠보산도’는 함경도 칠보산 일대의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남아있는 칠보산을 그린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병풍에 쓰인 제발(題跋) 번역을 통해 작품이 가진 서사적 가치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다음은 해석된 제발의 일부로 19세기 후반 칠보산이 갖고 있던 특이한 생태학적 특징을 알려준다.

“지금 이 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조개와 소라 껍데기가 쌓여서 왕왕 무더기를 이루고 있으나, 이것을 보면 또한 이 산이 일찍이 바다에 잠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해에 여섯 산이 다시 육지로 나오고, 바닷물이 이 산을 뒤덮을지는 알 수 없다. 이 산이 기이한 것은 산에 무가 가득히 자라고 있는데 모두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한 것이라는 점으로, 이곳에 사는 승려들은 이것을 식량으로 삼는다.”

칠보산도에 쓰인 제발 내용 중 일부


6개월에 한 번씩 한국 미술 전시실서 상설전

클리블랜드미술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13년 한국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독립 전시관을 열었다. 201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전시장을 교체했다. 개관 100주년이었던 2016년에는 한국 미술을 전담하는 학예직이 신설됐고, 현재 한국 미술 전시실에서는 6개월에 한 번씩 상설전이 개최되고 있다. 1980년에 있었던 ‘한국 미술 오천 년 전(Five Thousand Years of Korean Art’, 2017년 책거리를 주제로 한 미국 순회전 ‘책거리: 소유의 즐거움(Pleasure of Possessions in Korean Painted Screens)’, 2020년 서울공예박물관과 공동 주최한 ‘황금 바늘: 한국 자수의 예술(Gold Needles: Embroidery Arts from Korea)’ 등은 한국 문화재를 주제로 했던 중요한 특별전들이다.

해외 문화재 총서, 학예사에 멘토 역할

우리 모두에게 힘들었던 2020년의 끝자락에 필자가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는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한국 미술 소장품을 조사·연구한 국외한국문화재 총서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국문판)’ 가 발간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국외 기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를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보고서를 발간해 배포하고 있는데, 클리블랜드미술관 조사는 2015~2016년에 걸쳐 한 바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에 의한 현지 조사와 연구 성과물을 정리한 총서는 학예사에게 멘토 같은 존재다. 외국의 관람자들에게 우리 문화재를 정확하게 소개하고 해석하기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총서에 실린 사진은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유물이 가진 미술사적 특징을 보여주는 자료적 차원을 넘어,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현돼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실태조사는 과거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진행했다.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되면서 이를 전담했다. 재단은 2013년 ‘미국 미시간대학교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 발간을 첫 시작으로, 올해 16번째 총서인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발간했다. 이 총서는 외국 기관에 소장되어있으나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한국 미술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재가 어떤 다양한 경로로 외국 기관에 소장되었는지를 밝혀줌으로써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자와 학생들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국문판 총서를 통해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지닌 클리블랜드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를 알릴 값진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 영문판 총서는 내년에 발간될 예정이다.

임수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미술 학예 연구사

임수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미술 학예 연구사


임수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 미술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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