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조연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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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조연출들

입력
2020.1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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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조연출을 맡았던 윤상원 연출이 직접 쓰고 제작한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의 한 장면. 오세혁 연출가 제공


조연출(助演出) [명사]. 연출가를 돕거나 대리하는 사람. 또는 그런 지위.

조연출이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묻는다면 금방 답하기가 힘들다. 연출과 함께 적극적으로 장면을 만들기도 하고, 배우 한 명 한 명의 마음상태를 돌보기도 하며, 제작사와 창작진의 입장을 조율하기도 한다. 연출이 미처 체크하지 못한 부분을 알아서 해결하는 섬세함을 지닌 조연출이 있고, 탁월한 안목으로 연출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조연출이 있다. 조연출의 역할은 조연출을 맡은 사람의 성격을 닮아있다.

연출을 하다보면 때때로 어떤 ‘커다란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모든 배우의 호흡을 완벽히 맞추고 싶고,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를 계속해서 다듬고 싶고, 조명과 음향의 타이밍이 무대에 탁월하게 펼쳐지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 그 커다란 것들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마다, 조연출들은 잊으면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을 넌지시 알려준다. 배우 각자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만들었던 편안함에 대하여 말해주고,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진솔해서 좋았던 초고의 대사를 찾아서 보여주고, 누군가를 밝히면서 상대적으로 어두워진 누군가의 조명을 체크해서 알려준다. 나는 그때마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거울처럼 부끄럽다. 다음날도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음악극 '세자전'의 조연출이었던 박문영 연출이 쓴 창작 뮤지컬 '미치'는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5' 공모에 선정됐다.


좋은 조연출은 이별도 빠르다. 역량이 훌륭한 만큼 꿈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꿈이 뚜렷해서 역량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나의 꿈을 도와줬던 이들이기에, 이들이 꿈을 향해 떠날 때마다 기도에 가까운 응원을 하게 된다. A는 뮤지컬 작가/연출로 활동하며 좋은 작품에 꾸준히 섭외되고 있다. B는 조연출을 하면서 창작뮤지컬 대본을 쓰고 쇼케이스를 했다. C는 창작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연출공부에 매진중이다. D는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어 꾸준히 창작공연을 올린다. E는 아예 제작사를 만들어 최초의 자체제작 뮤지컬을 만들었다.

연출과 조연출로 만났던 이들이 눈부시게 성장하며 어느덧 새로운 도모를 꿈꾸는 동료로 만나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 나도 종종 식은땀을 흘린다. 이제는 그들이 꿈꾸는 ‘커다란 것’에 박수를 보내는 한 편, 그들이 일깨워줬던 ‘소중한 것’을 다시 돌려줄 수 있도록 내 역량이 성장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작업이 많아질수록, 그래서 함께 했던 조연출이 많아질수록, 식은땀을 흘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꿈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이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식은땀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조연출들은 모두 내년에 저마다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스산하고 쓸쓸한, 다음날을 점치기 힘든 극장의 겨울에도, 계속해서 공연을 꿈꾸는 이들이 참 고맙고 뭉클하다. 이들의 꿈이 꼭 따뜻한 봄이거나 뜨거운 여름이기를 바란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겨울이 온다면, 이들에게 받았던 에너지와 온도를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있기를, 그래서 최소한 이들의 극장에 포근한 공기 한 줌을 보탤 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해있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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