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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 필요한 사회

입력
2020.12.24 06:00
수정
2020.12.24 11: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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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EPA연합뉴스

오늘 밤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신다.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고, 선물꾸러미를 가득 실은 썰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실 것이다. 전 세계 수억의 어린이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한 달여 동안 계속된 캐롤에 나오는 산타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밤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이 어린이들은 이런저런 선물을 달라는 편지를 매년 수백만 통씩 산타 앞으로 보낸다. 산타의 ‘거주지’로 알려진 북극 근처의 나라 핀란드 산타는 특히 인기가 높다. ‘핀란드 96930 북극 산타클로스마을 중앙우체국’의 산타 주소지로 소원을 담은 편지가 유럽 나라들은 물론, 중화인민공화국과 태평양 섬나라 통가 등 세계 200여 국가로부터 해마다 60여만 통이 배달된다고 한다.

산타 할아버지와 같이 실제로 있지 않는 것도 많은 사람이 믿으면 어느새 사회적 현실이 된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 존재를 믿으면서 소원편지를 보내고 선물 양말을 걸어 두기도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을 새우려고도 한다. 부모들은 조심스레 선물을 준비하려 애쓰고, 회사들은 정신없이 상품을 더 팔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코카콜라는 1930년대부터 북반구에 겨울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산타를 모델로 하는 광고를 내 보내고 있고, 세계 곳곳의 백화점과 쇼핑몰은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장식된다.

이렇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 많은 사람이 믿도록 한 것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도 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도 수만 명이 믿으면 이는 곧 현실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한몸같이 움직이게 한다. 개인으로서 한계가 너무나 명백한 인간 몇백만을 한 집단으로 조직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일을 해낸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이집트에 살던 사람들은 파라오가 신의 현신임을 믿고 피라미드를 건설했으며, 한반도에서는 단군이 하느님과 곰의 자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나라를 세웠다. 파라오는 사라지고 곰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대에 와서도 인간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도 볼 수도 없는 민족과 국가, 시장과 회사라는 상상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만들어 낸 이야기를 다 같이 믿고 그 믿음 아래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며 달 탐사나 인터넷 건설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성공적이지는 않다. 지난 한 해도 많은 논리와 주장이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우리 모두의 믿음을 얻지는 못했다. 검찰 개혁과 독립 검찰,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과 코로나 확산 대응 실패, 주거의 안정과 집값 상승의 논리 등등. 우리들 대다수를 설득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한때 기세를 올리는 듯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다. 각각 일부의 믿음만 확보하면서 사회가 갈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당분간 성공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우리들 대다수를 믿게 하는데 실패한 논리들이 그 모양 그대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우리들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믿음 아래 한 몸같이 움직이며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바이러스도, 집값도, 검찰도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오늘 밤은 산타가 올 것이라고 믿어 보자.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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