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자치분권 싹 틔우려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관련 좌담회'에서 황명선(왼쪽)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 회장과 김순은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이 전부개정안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자치분권위원회 제공
32년 만에 의결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으로 제도적 밑바탕이 만들어진 만큼 ‘주민주권 시대’가 뿌리 내리기 위해선 주민ㆍ지방의회ㆍ지방자치단체 등 지방자치 주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전부개정안 시행까지 1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바뀌는 제도를 숙지해 역량을 높이고, 주민자치 인식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 않고선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 “새로운 자치분권 시대 개막”과 같은 기대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성 약화...'지방자치의 역설' 방지책 필요
학계에선 우선 지방권한 강화가 오히려 지자체 상황을 악화하는, ‘지방자치의 역설’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일례가 제주특별자치도다.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제주지방국토관리청과 제주지방중소기업청, 제주지방해양수산청 등 7개 특별행정기관이 제주자치도 소속으로 이관됐다.
그러나 해당 업무가 이양된 뒤 오히려 전문성이 약화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제주도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됐다.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주도 내 도로 관리 업무를 도가 맡게 됐지만 도로관리 기술ㆍ정보 부족, 중앙기관과의 업무연계 부족 등으로 오히려 도로관리 수준이 낮아졌다”며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자체의 역량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중앙정부의 간섭 없는, 물밑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역할 보조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전부개정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지자체 공무원의 역량 강화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공무원들이 새로운 제도를 공부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늘어난 권한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공무원 역량에 따라 각 지자체의 자치행정 수준도 상당히 차이 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부개정안은 지자체의 조례 제정 범위를 기존 ‘법령의 범위 안’에서 ‘법령의 범위에서’로 확대, 적극적인 법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각 지자체는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조례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조례를 무력화하는 하는 법 제정도 할 수 없게 한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지방의회, 신뢰성 회복이 관건...공천제 폐지 요구도
지자체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지방의회가 당장 해야 할 과제는 신뢰회복과 투명성, 청렴도 강화다. 지난해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이 해외 연수 도중 가이드를 폭행해 파문을 일으킨데 이어, 서울 강남구의회 의장이 음주운전을 하는 등 올해에도 지방의회 의원들의 일탈은 끊이지 않았다. 경기 부천시의회 의장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은 사람이 깜빡하고 가져가지 않은 현금 70만원을 훔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조사 결과에서 지방의회는 6.23점(10점 만점)을 받아 공공기관(8.19점)에 크게 못 미쳤다. 김정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4월 서울시의회에선 책임성ㆍ청렴성 강화에 대한 자정결의안을 만들었다”며 “이 같은 노력이 광역의회를 넘어 전국 228개 기초의회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상직 대표회장은 “지방의회 정당공천제를 폐지해 지방의원들이 지역 살림은 뒷전으로 한 채 정치 싸움에 몰두하는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공개제도의 시발점이 된 1991년 청주시의회의 행정정보공개 조례처럼 지방의회가 과감한 정책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의정활동 환경이 나아진 만큼 혁신조례 제정 등 이에 걸맞은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문턱 높은 주민소환...참여인식 높여야
주민주권 시대의 핵심인 주민에 대해선 교육을 통해 지방자치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많았다. 2007년 도입된 주민소환제의 경우 전국에서 100건이 추진됐지만 투표로 이어진 것은 10건, 투표결과에 따라 소환까지 이뤄진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주민들의 지방자치 참여 인식이 낮다는 얘기다. 홍준현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조례를 직접 의회에 내거나, 주민감사ㆍ주민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연령이 18세(기존 19세)로 낮춰진 만큼 고교에서부터 지방자치ㆍ행정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민자치를 가로막는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있다. 전상직 대표회장은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단체장이 임명하는 현재의 읍ㆍ면ㆍ동장은 주민들보단 단체장과 동료(관료)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이 지방자치의 진짜 주인이 되려면 이런 불합리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