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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기는 삶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담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싶다"

입력
2021.01.01 04:30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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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부문 당선자 성욱현씨 당선소감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 성욱현씨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 성욱현씨


시작과 맺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간단한 이야기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 삶은 거침없이 수면을 가르는 조약돌처럼 단단했다. 망설임 없이 날았고 튕겼고 잠겼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단상이 그랬다. 조약돌이 아득하게 늘어서 있는 호숫가에 홀로 서 있는 것이다. 눈을 돌리면 아득한 개수의 조약돌과 마주하는 것이다.

아직 던져야 할 돌이 끝없다. 파문이 끊이지 않는 삶 속에서 그렇게 난 고요했다. 시작과 맺음이 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날아오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삶도 깊고 고요한 하루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요 속에서 치열하게, 고독하게 글을 썼다. 불행했다.

그러다 동화를 만났다. 나는 이제 아무도 몰래 돌을 주워 주머니에 담는다. 나를 위한 글을 쓴다. 호숫가를 서성이는 치열하고 고독하고 불행한 아이를 위해 쓴다. 잠기는 삶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고 딱히 쓸 곳도 없겠지만 주머니 속에 담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들과 함께 주머니를 두둑이 챙겨 호숫가를 벗어날 거다.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어머니와 로봇 팔의 마음을 그리는 아버지. 그들이 내 꿈에 보낸 애정처럼 나도 그들의 꿈에 애정을 보낸다. 내 삶의 강과 같은 삼촌과 숙모들. 어린 시절, 강변에서 커다란 돌덩이를 달궈 삼겹살을 구워 먹은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 동화에 밝은 점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다.

동화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신 박덕규 교수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신 최수웅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김리리 작가님께 많은 배움을 얻었다. 작가님의 한마디가 내 문학관을 바꾸었다. 그리고 김지현. 그녀와 나눈 합평은 즐거운 기억이다. 글이 미워질 때마다 그 시절 늦은 밤들을 떠올린다. 심사를 맡아 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이제 시작이란 것을 잘 안다. 부름에 답하겠다.

곽효정, 김지은. 동화를 함께 쓰자는 그들의 말이 나를 이끌었다. 그들의 열정과 활기를 존경한다. 우리 뱅글라스가 곧 환히 빛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책방 허송세월의 사장이자 나의 유일한 선배 최진형, 항상 좋은 합평을 해주시는 이유정 님과 심화반 동료들, 내 문학의 고향 아순시온 문우들, 터키의 푸른 어른들. 나의 아픔 나의 해. 모두 잊을 수 없다.

신춘문예 소감의 마지막 문단은 오래 품고 있었다. 아직도 그가 건넨 편지를 외우고 있다. 이 문장이 나를 울게 했다.

‘그게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 좋은 길인지, 나쁜 길인지, 따지지 않고 응원을 보낸다.’

나는 문장을 씹고 또 씹었다. 그렇게 걷고, 달리고, 등단했다. 지면을 빌려 그에게 받은 문장을 갚는다.

‘사랑하는 나의 누나. 나의 작은 테오. 누나 덕분에 나는 수유의 어두운 골방 속 작은 고흐였었지. 내 글은 누나 거야. 나는 누나의 동생이야.’

△1994년 밀양 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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