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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도 스며든 ‘코로나 우울’

입력
2020.12.21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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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투고작 경향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심사를 보고 있다. 올해 심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이뤄졌다. 앞줄 왼쪽부터 황예인 문학평론가, 김솔 소설가, 은희경 소설가, 이광호 문학평론가, 김금희 소설가. 왕나경 인턴기자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심사를 보고 있다. 올해 심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이뤄졌다. 앞줄 왼쪽부터 황예인 문학평론가, 김솔 소설가, 은희경 소설가, 이광호 문학평론가, 김금희 소설가. 왕나경 인턴기자


전 세계를 시름에 잠기게 했던 코로나19는 올 한해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한국문학에 새로운 미래를 선사할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가 완료됐다. 올해 응모자는 시 755명, 소설 608명, 희곡 112명, 동화 250명, 동시 288명으로 총 2,013명이다. 2,566명이 응모했던 지난해보다 500명 남짓 줄었지만 2,000명 안팎이었던 평년과 비슷한 수치다.

코로나가 집어삼킨 한해였던 만큼, 응모작에도 코로나를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코로나가 환기한 정서를 녹여내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동화 부문 한 심사위원은 “코로나로 아이들 일상에 큰 변화가 초래된 해여서인지 이러한 현실에 당면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시 부문 한 심사위원은 “죽음, 울음, 잠이 올해 투고작의 강력한 키워드인데 모두 무기력의 집합된 형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설 부문 한 심사위원도 “코로나로 인한 고단함과 피로를 다룬 소설이 꽤 보였다”고 말했다.

코로나를 소재주의적으로 접근한 나머지 문학적 성취를 거두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시 부문 또 다른 심사위원은 “현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철학이 결여된 상태에서, 구체성이 없는 막연한 추상과 관념에 빠진 시들이 많았다”고 비판했다.

AI(인공지능)와 알고리즘, SNS와 유튜브처럼 미디어와 기술 환경의 변화를 문학적 배경으로 삼는 시도들도 보였다. 소설 부문 한 심사위원은 “유튜버나 게임 주인공을 소설 속 주요 인물로 삼거나, SNS로 생기는 오해와 여론몰이, 댓글과 이미지 조작처럼 인터넷 환경의 변화로 인한 고민을 다룬 소설들이 더러 보였다”고 했다.

기존 성 역할의 탈피나 퀴어를 다루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젠더 고정에서 벗어나는 시도 또한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시 부문 한 심사위원은 “화자의 성별을 짐작할 수 없고, 젠더 경계를 완전히 무화시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부문 한 심사위원 역시 “여성을 더 이상 피해자의 자리에만 가두지 않는 등 젠더 문제 서사화에 있어서도 기존의 프레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희곡 부문의 경우 페미니즘과 퀴어, SF와 동물 권익 등 주제적인 측면에서 관심사의 다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희곡 부문 한 심사위원은 “기존 희곡의 전통적인 주제였던 계급 갈등이나 세대 간 갈등, 남녀 갈등을 다룬 작품은 줄어든 대신 다양한 개별 관심사가 희곡의 주제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반면 “역사의 진보나 공정한 사회를 위한 인물의 분투 등, 긍정적인 비전에 대한 에너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동화 부문에서는 전통적 양육자인 ‘엄마’가 부재한 자리에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등장시키는 작품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러나 정작 2020년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과 정서를 중심에 놓은 작품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평이다. 동화 부문 한 심사위원은 “자라나는 현재의 독자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의 유년기를 풀어놓고 그것을 동화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하며, “비대면 시대의 쓸쓸하고 외로운 어린이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문학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동시 부문 심사위원들 또한 “오늘날의 어린이와 유리된 얘기가 많았으며, 감수성 역시 요즘의 어린이와 소통하기 힘들어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동물이나 식물 같은 그간 동시의 단골 소재들 대신 실생활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으려는 시도들은 장점으로 꼽혔다. 한 심사위원은 “소재부터 목소리까지, 기존의 아동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보여 우리 동시인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당선작은 내년 1월1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발표된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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