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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감염자가 좀비 취급을 받는 세상

입력
2020.12.20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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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산행'은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 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중국의 우한에서 퍼지기 시작했을 때 떠돌았던 음모론처럼 모 바이오단지에서 일어난 약품 누출 사고로 인해 생성된 알 수 없는 물질이 좀비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본래 좀비(zombie)란 말은 아프리카 폰 족이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되었으며 부두(voodoo)의 어원은 영혼을 뜻한다고 한다. 좀비란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하며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다. 좀비의 행태를 빗대어 파생된 '좀비족'은 관료화된 사회조직에서 일찍부터 요령과 처세술만 터득해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다시금 창궐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슬기로운 방역생활이 공염불에 불과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3단계의 문턱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 간의 접촉으로 전파되므로 모든 일상을 거의 멈추게 하는 '락다운(lockdown)'이 가장 바람직한 방역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한테 최소한의 경제활동도 포기해야 하는 비극이 닥친 원인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선천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존재이기에 타인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본능을 타고 난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누군가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갈망했던 습성이 지금의 '팬데믹(pandemic)'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방역을 위해 경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정부 당국의 고민을 무턱대고 비난만 할 수는 없지만 겨울철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안일함으로 국민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준 책임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사람에 대한 공포로 바뀌었으며, 마스크로 미처 가리지 못한 눈으로 모든 사람을 바이러스 보균자로 의심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집에서도 가족 간에 접촉을 삼가고 마스크를 쓰라는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으니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조차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좀비의 소굴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단 때문에 예기치 않게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있다. 선택에 관한 심리학 연구의 권위자인 쉬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교수의 실험에서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듯하지만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만들 뿐이며, 결국 선택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론적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울 때 양쪽을 모두 선택하는 묘수를 부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하나의 선택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방역과 경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Powell)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 해줄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선택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따라서 지금은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개인의 선택보다는 국가 책임자의 단호한 선택이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바이러스의 감염을 피해 들어온 아늑한 공간에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갑자기 좀비로 변해 나를 공격하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매섭고 추운 겨울날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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