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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떠나도 미국의 위기는 계속된다

입력
2020.12.20 1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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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민
박홍민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11월 초 대선 이후 지금까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너무 비관적인가?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위기라고 느끼는 정도가 너무 약해서 더 충격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이 선거로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권한을 위임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의제도이다. 적어도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설파할 때 빠지지 않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70~80% 정도가 이번 선거에 심각한 이의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 본인부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86번 이상의 법원 판결에서 ‘부정선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난 12월 14일에는 공식 선거인단의 투표까지 끝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다는 트위터를 쓴다.

더 황당했던 사건은 바이든이 박빙으로 이긴 4개 주의 선거가 위헌적으로 치러졌다며 텍사스주 검찰총장이 연방대법원에 제기한 소송에 무려 17개 주의 검찰총장들과 연방하원 공화당 의원 3분의 2가 ‘지지 소견서(amicus brief)’를 제출한 것이었다. 대단히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조차 바로 며칠 뒤 내용도 심사하지 않고 소송거리가 안된다며 기각한 해프닝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상당수 선출직 정치인이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를 의식해 대단히 무모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대선 불복 시위 벌이는 트럼프 지지자들. AP 연합뉴스

대선 불복 시위 벌이는 트럼프 지지자들. AP 연합뉴스


사실, 많은 공화당 지지자가 선거부정이 있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패배는 언제나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단순히 지지했던 후보의 주장을 믿고 따르는 정도가 아니다. 먼저 대외적으로는 이중으로 투표하거나 죽은 사람이 투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편협한 기준으로 ‘합법’적인 투표를 사전에 정의하고,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불법’이 일어났으니 이곳의 전체 표를 무효 처리하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투표 소프트웨어가 트럼프를 뽑은 2,700만 표를 자동으로 삭제했다는 가짜뉴스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포시키고 있다. 적극적인 왜곡 시도이다.

그 결과 대통령 선거의 법적 정당성과 신뢰에 심각한 회의를 가진 집단이 생겨났다. 거의 매일같이 시위를 벌이고 있고, 반 트럼프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규모와 영향력도 상당해져서 지난 수요일에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연방상원 국토안전위원회에서 선거 부정 청문회까지 열렸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정치적 우파 또는 보수주의자를 넘어서 유사 파시즘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V-Dem(전 세계 민주주의 연구자 그룹)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공화당 지지자들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들이 민주당에 대해 가진 혐오감도 현저히 상승했다. 그 수준도 거의 제3세계 권위주의까지 근접했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 당선인이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차기 행정부 첫 국방장관 지명자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 당선인이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차기 행정부 첫 국방장관 지명자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러한데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아직 큰 위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오히려 민주당 내부의 조율과 정리에 바쁜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성별과 인종의 다양성을 늘릴 것을 요구하는 한 분파와 경제적 불평등을 적극 개선하기를 바라는 다른 분파가 동상이몽 중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도 백신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여기에 많은 전문가가 바이든 행정부의 수난도 예상하고 있다. 연방의회, 연방대법원과의 갈등이 상당할 듯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혼자 주도하는 방식인 행정명령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리라 전망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과의 간극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공화당 지지자들의 박탈감은 한층 심해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미국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정치적 수사도 염려스럽다. 지난 4년간 민주주의의 후퇴가 상당했다고는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과 공화당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의 정당성까지 부정하는 마당에 이들을 자극해서 자칫 폭력까지 사용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 지금 위기가 시작되고 있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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