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FIFA 푸슈카시상…‘최고의 골’ 영예
지난해 12월 7일 번리전 ‘70m 질주 원더골’

손흥민이 1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 2020'에서 푸슈카시상을 수상한 뒤 온라인 인터뷰를 하고 있다. 취리히=AP 연합뉴스
1954년 6월 17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1950년대 헝가리 축구 황금기를 이끈 ‘골의 예술가’ 페렌츠 푸슈카시(1927~2006)는 스위스 월드컵 무대에서 이름도 낯선 아시아 변방국가 대한민국을 만났다. 이날 한국을 상대로 두 골을 몰아넣은 푸슈카시는 팀의 9-0 대승을 이끌며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제대로 보여줬다. 푸슈카시는 비록 부상으로 8강과 4강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도 결승에서 서독에 2-3으로 패했음에도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누구보다 강력하고 정확한 왼발 슛을 구사했던 그가 얼마나 차원이 다른 공격수였는지 보여준 결과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2020년 12월 18일 푸슈카시와 한국은 재회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그의 이름을 붙여 한 해(11월~이듬해 10월 기준)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터뜨린 선수에게 수여하는 ‘푸슈카시상’ 수상자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28)이 호명되면서다. 세계 최고 리그로 평가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그는 푸슈카시가 주로 사용했던 왼발은 물론 오른발, 머리까지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며 점점 진화했고, 어느덧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을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 2020’ 푸슈카시상에 올려 놓은 득점 장면은 그가 왜 세계 최고 공격수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7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EPL 16라운드 번리전. 손흥민은 전반 30분56초쯤 수비진영에서 공을 이어받아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질풍 같은 드리블을 시작했다. 상대 수비가 벌떼처럼 달려들었음에도 공을 몰고 뛰는 손흥민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약 70m를 드리블 하는 동안 그의 앞에서 덤빈 선수만 골키퍼 포함 6명, 질주를 저지하기 위해 뒤에서 따라붙은 선수까지 포함하면 9명이었다. 이들을 무력화하고 골 문 정면까지 달려가 오른발로 밀어 넣은 시간은 31분06초였다.

1954년 6월 취리히 그라스호퍼 구장에서 대결하기 직전 정렬한 한국과 헝가리 선수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10초의 마법’은 1년이 넘도록 이곳 저곳에서 ‘최고의 골’로 인정받으며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됐다. 스피드와 체력, 볼 컨트롤 능력, 넓은 시야, 심리전 능력, 그리고 골 결정력까지 모두 갖춘 선수가 아니고서야 넣을 수 없는 골이었다. 손흥민 본인도 수상 후 “득점 후엔 대단한 골이란 걸 몰랐는데 다시 보고 ‘특별한 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푸슈카시상은 유럽 진출 선구자인 차범근(67), 20세기 첫 한국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박지성(39)도 품지 못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 아시아 선수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모흐드 파이즈 수브리(33ㆍ말레이시아) 이후 두 번째다.
EPL사무국이 ‘12월의 골’로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영국 BBC 및 디애슬래틱이 선정한 ‘올해의 골’, EPL 사무국이 선정한 2019~20시즌 ‘올해의 골’, 그리고 푸슈카시상까지 이어진 손흥민의 ‘인생 골’은 그의 축구 인생 전성기를 더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지난 2월 오른팔 골절 수술이란 악재 속에서도 지난 시즌 EPL에서만 11골 10도움(시즌 18골 12도움)으로 자신의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세운 손흥민은 전체 일정의 약 3분의 1을 막 넘긴 이번 시즌엔 13경기에서 11골 4도움(시즌 14골 7도움)을 기록 중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활력이 되고 있어 의미는 더 크다. 앞으로 그가 큰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축구인생은 물론 유럽 무대에 선 한국 공격수로서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의 득점 추세는 지난 4시즌보다 월등히 빠른 상황이라 ‘신기록 행진’ 전망은 낙관적이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17일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2020~21시즌 EPL13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 32분 동점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리버풀=AP 연합뉴스
일단 해를 넘기지 않고 리그에서 10골을 넣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10호 골을 넘긴 첫 시즌인 2016~17시즌엔 2017년 4월 8일 왓포드와 32라운드 경기에서 리그 10호이자 시즌 17호 득점을 기록했고, 2017~18시즌엔 2018년 3월 3일 허더즈필드와의 29라운드 경기, 2018~19시즌엔 2019년 2월 2일 뉴캐슬과의 25라운드 경기 때 리그 10번째 골을 넣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리그가 멈춰 섰던 2019~20시즌의 10호 골(시즌 17호)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5개월여 전인 7월 7일 35라운드 아스널전에서 완성됐다.
최근 리버풀과 13라운드 경기에서 토트넘 입단 후 99번째 골을 터뜨린 그는 20일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100번째 득점에 도전한다. 더 나아가서는 소속팀 토트넘의 60년 만의 우승, 그리고 아시아인 최초 EPL 득점왕까지 내다볼 수 있다. 전성기를 달리는 만큼 선수로서의 가치도 최고점을 지속적으로 찍고 있다. 축구선수 이적료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은 최근 손흥민의 예상 이적료를 9,000만 유로(약 1,211억원)라고 발표하면서 최근 두 달 사이 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선수로 지목했다. 약 두 달 전인 10월 13일엔 7,500만유로(약 1,009억원)이었다.
한편 폴란드 출신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32ㆍ바이에른 뮌헨)는 이번 시상식에서 리오넬 메시(33ㆍ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ㆍ유벤투스)를 제치고 올해의 남자선수로 선정됐다. 올해의 여자선수는 잉글랜드 출신 루시 브론즈(29ㆍ올림피크 리옹), 올해의 남자 골키퍼에는 레반도프스키의 팀 동료인 마누엘 노이어(34)가 각각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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