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줄어도 임대료?올리는 사례 적지 않아
건물주 자발적 호의에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이해관계자 고통 분담할 방안 마련돼야"
"장사 안 해도 좋으니 빨리 여길 접고 나갈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9)씨 부부의 목표는 '장사로 돈을 버는 것'에서 '하루라도 빨리 장사를 접는 것'으로 바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출이 3분의 1 이하로 준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건물주는 임대료까지 올렸다.
건물주는 5월 재계약 때 보증금(1,000만원)과 월세(70만원)를 각각 5%씩 인상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한도(5%)의 최대한으로 올린 것이다. 한 달에 3만 5,000원 더 내는 것이지만, 코로나19로 하루 매출이 20만원에서 5만원 내외로 급감한 김씨 부부에게 5%는 넘지 못할 높은 벽이었다.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월부터는 관리비(월 10만원)를 돌연 50% 올렸다. 김씨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우니 사정을 감안해 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부터 월세는커녕 관리비도 못 내는 신세가 됐다.
임대료 인상에 한숨 쉬는 자영업자들의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자영업자의 매출 급감에 따른 임대료 부담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지만, 오히려 임대료가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소매점을 열 계획인 A(32)씨는 임대차 계약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건물주가 기존 임차인이 내던 월세보다 10% 올리겠다는 의사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A씨는 "이전 임차인에게 억대의 권리금을 주기로 한 계약을 이미 마친 상태여서, 월세를 깎아 달라는 말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를 자발적으로 덜 받겠다는 건물주의 사례들이 종종 알려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도대체 그런 착한 임대인을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느냐"고 하소연한다. 여전히 건물주가 '갑'인 상황에서,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 줄 유인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건물주의 호의'에만 의존해 '임대료 덜 받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만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임차인이 매출 감소로 고통을 겪는 만큼 임대인 역시 이 고통을 일부 분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지호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사무국장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인건비는 줄일 수 있고, 세금도 매출이 없으면 적게 내지만 임대료는 고정 비용이라 줄일 방법이 없다"며 "코로나 상황에서만큼은 임대인, 임차인, 금융기관 등 이해당사자가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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