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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인 듯, 향인 듯, 오묘한 황의 세계

입력
2020.12.17 17:30
수정
2020.12.17 17:4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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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언
최낙언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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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냄새분자가 무엇일까? 냄새로 느껴지려면 휘발성이 있어야 하므로 냄새분자는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그중에서 암모니아는 질소 하나에 수소 3개가 결합한 가장 가벼운 분자이고, 황화수소는 황에 수소 2개가 결합한 가장 간단한 분자다. 둘 다 자체로는 냄새도 고약하고 과량이면 유독한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그런데 암모니아는 단순히 악취 물질로 알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 바로 단백질이 시작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유기물을 만들지만, 단백질의 합성에 필수적인 암모니아만큼은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뿌리혹세균이나 비료에 질소(암모니아)를 의존한다.

그래도 암모니아는 악취로라도 알고 있지만 황은 서글프게도 그 냄새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에 시스테인과 메티오닌은 반드시 황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분자다. 이 두 분자는 생리적으로 중요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냄새의 원천으로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열대과일, 고기, 커피, 와인, 채소 등의 매력을 설명하는 향들이 이들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양은 많지 않다. 단백질은 원래 귀한 자원인데, 그 중에 딱 두 가지 뿐인 아미노산에서 만들어지는 향이 양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다. 단지 우리가 매우 작은 양을 너무나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악의 악취로 꼽는 스컹크의 냄새인데, 핵심 분자는 2-부텐티올, 3메틸부탄티올로 황을 포함한 분자다. 티올은 분자의 끝 쪽에 황화수소가 포함된 것인데 대부분의 티올이 냄새가 강렬하다. 오죽하면 일부러 악취물질로 활용하기도 한다.

1937년 3월 미국 텍사스의 한 학교에서 천연가스 누출로 대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천연가스 자체에는 냄새가 없기 때문에 가스 누출을 눈치 채지 못하여 폭발 사고로 294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천연가스나 프로판 가스에는 일부러 에탄티올 같은 냄새가 강한 물질을 첨가하도록 하였다. 와인에서 자외선이 많이 노출되면 원하지 않는 스컹키한 냄새가 발생하는데 이것도 작은 양의 황화합물 때문이며, 우리의 방귀 냄새도 인돌이나 스카톨 같은 질소화합물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황화수소, 디메틸설파이드, 메탄티올 같은 황화합물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이자 극심한 악취가 나는 꽃으로 유명한 타이탄 아룸(일명 시체꽃)의 냄새 물질도 몇가지 황화합물 때문이고, 바닐라 커스터드를 변소에서 먹는 것 같다고 하는 두리안의 악취도 여러 황화합물들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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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화합물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이기도 하다. 가장 단순한 냄새 분자인 황화수소의 냄새를 흔히 썩은 계란 냄새로 묘사하는데, 실제로 잘 희석하여 맡아 보면 삶은 계란의 냄새다. 계란은 매우 복잡한 성분으로 되어 있어 계란 특유의 맛은 매우 복잡한 성분의 상호작용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고작 극미량의 황화수소 한가지로 계란과 똑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 오히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과거에 우리는 참기름을 정말 좋아해서 어떤 음식이든 참기름만 넣으면 고소하고 맛있다고 했는데 참기름의 주 향기물질도 황화합물이다. 그래서 참기름에 생소한 서양 사람은 참기름 냄새를 약간 스컹키하다고 하기도 한다. 요즘은 서양송로버섯인 트러플이 고급 식재료로 매우 인기를 끄는데, 그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에 우리에게 참기름이 그랬듯이 어떤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으로 변하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트러플의 특징적인 향기물질도 황화합물이다.

황은 냄새분자 중에서 정말로 독보적이고 지배적인 존재인데 똑같이 생긴 냄새 물질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산소 하나만 황으로 바꾸어도 그 냄새 강도가 적게는 수천배 심하면 1억배나 강해지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코가 황의 냄새에 예민한 것은 요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고기를 구우면 나는 향도, 커피의 향도 그 핵심적인 매력을 설명하는 것은 황을 포함한 냄새 분자다. 황은 워낙 소량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조금만 과해도 불쾌한 냄새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황 냄새를 좋아하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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