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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소년들이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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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소년들이 묻혔다

입력
2020.12.18 07: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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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도지어 소년 학교 생존자 중 한 명인 딕 콜론이 플로리다 주 마리안나에 있는 희생자 묘지를 거닐고 있다. ⓒPhil Coale /AP

2012년 도지어 소년 학교 생존자 중 한 명인 딕 콜론이 플로리다 주 마리안나에 있는 희생자 묘지를 거닐고 있다. ⓒPhil Coale /AP


도지어 소년 학교는 1900년 미국 플로리다 마리아나 1,400에이커(약 5.7㎢) 땅에 주립 교화 학교로 처음 문을 열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청소년 교화 기관이었던 이곳에선 교직원에 의한 학대, 구타, 강간, 고문, 심지어 살인까지 상습적으로 벌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증언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미국 법무부의 공식 조사로 끔찍했던 참상이 드러나면서 설립 111년 만인 2011년 폐쇄됐다. 100여명이 이곳에서 사망해 인근에 묻힌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까지도 유해 발굴을 위한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장편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바로 이 도지어 소년학교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2017년 수상작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작가에게 두 번째 퓰리처상을 안긴 작품이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니클의 소년들’에 대해 “인간의 인내심과 존엄성, 구원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라고 평했다. 화이트헤드는 이 수상으로 퓰리처상 역대 네 번째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더블 수상자’가 됐다.

1936년 도지어 소년학교의 '화이트 하우스' 건설 모습. 이 학교에서 벌어진 잔혹한 일들은 소설 '니클의 소년들'의 영감이 됐다. 위키백과

1936년 도지어 소년학교의 '화이트 하우스' 건설 모습. 이 학교에서 벌어진 잔혹한 일들은 소설 '니클의 소년들'의 영감이 됐다. 위키백과


소설은 2010년대 탤러해시 니클 캠퍼스의 북쪽 비밀 묘지에서 금이 간 두개골과 대형 산탄이 잔뜩 박힌 갈비뼈를 비롯해 43구의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수많은 유해의 출처가 인근의 소년 감화원 ‘니클 캠퍼스’임이 밝혀지고, 이 소식은 뉴욕에 사는 엘우드 커티스로 하여금 1960년대, 끔찍했던 그곳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평생 니클에서 도망치고자 했던 엘우드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과거의 진실을 드디어 밝힐 때가 됐음을 깨닫는다.

1962년, 엘우드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음반을 닳도록 듣고 인종문제에 대한 생각을 편지에 담아 신문사에 보낼 정도로 영특한 흑인 소년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담배가게에서 일하던 엘우드에게 어느날 공짜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대학에 첫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 가혹한 불운이 그를 덮친다. 당시는 분리정책으로 인해 흑인과 백인이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엘우드는 히치하이킹을 통해 흑인 남성이 운전하는 차에 얻어 타는데, 이로 인해 차량 절도 혐의를 뒤집어쓰고 니클 감화원에 보내진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2017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2020년 '니클의 소년들'로 퓰리처상을 두번 수상했다. ⓒChris close. 은행나무 제공

콜슨 화이트헤드는 2017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2020년 '니클의 소년들'로 퓰리처상을 두번 수상했다. ⓒChris close. 은행나무 제공


열악한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는 이곳에서도 엘우드는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친구 터너도 만난다. 니클은 복역 기간을 모두 채우거나, 돈 많은 친척이 갑자기 나타나 변호사를 선임해주거나, 탈출을 시도하거나, 혹은 죽어서만이 나갈 수 있는 곳. 엘우드는 이 곳을 벗어날 자신만의 방법을 떠올린다. 바로 니클의 진실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다. 엘우드는 그간 몰래 기록해온 니클의 비리 목록을 바깥 세상에 알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감사원이 니클을 방문한 날 터너와 함께 이 계획을 실행한다. 그러나 결국 이 계획은 엘우드와 터너의 운명을 뒤바꿔놓게 된다.

소설은 소년 엘우드의 과거와 나이든 엘우드의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이 같은 서술방식은 오랫동안 땅 속 깊이 묻혀있던 진실을 조금씩 마주하는 데 적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실의 모습이 모두 드러났을 때 독자가 느끼게 될 충격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막연히 엘우드가 무사히 그곳을 탈출해 성인이 됐다고 안도하고 있던 독자들에게,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어떤 방법으로 그 학교를 벗어났던, 그들은 항상 도주자 신세”라는 엘우드의 독백을 단숨에 이해하게 만든다.

니클의 소년들

  •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발행
  • 268쪽ㆍ1만4,000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인종차별과 인간의 악행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악행의 얼굴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1945년부터 1982년까지 국가의 부랑아 정책에 따라 어린이들을 무분별하게 납치하고 강제노동 등 온갖 폭력을 자행한 선감학원,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 단속을 명목으로 531명의 사망자를 냈던 형제복지원, 그리고 십수년간 아이들을 감금하고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경기도의 한 목사. 어떤 사건은 그래서 영원히 종결되지 않는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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