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데 필요한 도서 모음

연말을 앞두고 코로나19사태가 잦아들긴커녕 확진자가 연일 1,000명대로 폭증하며 대유행에 접어들었다. 17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날수를 세면서, 정상적인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생각으로의 초대’에 응하자.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
이탈리아 소설가 파울로 조르다노가 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은행나무)에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던 로마에서 자가격리 동안 이 책을 썼던 그는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또 다른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인류의 기억과 서사를 새로이 써내려 갈 것을 제안했다.
자, 그럼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2월부터 국내에 쏟아진 코로나 관련 서적만 해도 500여종. 그 중 코로나 시대를 명확하게 진단하고, 코로나 이후 시대를 과감하게 준비하는데 필요한 책들을 모아봤다. 출판평론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박태근 알라딘 도서3팀 팀장, 인문ㆍ역사문화 분야를 맡고 있는 교보문고 모바일인터넷영업팀 김수현 MD에게 추천을 받았다.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사태로 지칠 대로 지친 연말, 두려움과 공포 대신 성찰과 각성의 시간을 갖는데 도움될 만한 책들이다.
①진단-감염병은 인간, 권력의 문제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ㆍ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ㆍ팬데믹의 현재적 기원ㆍ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공포는 실체를 모를 때 더욱 커지는 법. 코로나 사태 초기 영문 모를 바이러스의 습격에 신형 감염병의 실체와 기원을 규명하는 책들이 각광받았다. 감염병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필독서’로 꼽히는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꿈꿀나무)는 ‘지구의 정복자’ 인간이 무분별한 생태계 균형 파괴로 감염병을 야기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너머북스)은 조류 인플루엔자, 사스, 에볼라 등이 다국적 거대 농업회사들의 글로벌 공급망을 따라 퍼져 나갔다는 근거를 들어, 신종 감염병을 불러온 주범으로 초국적 거대 농축산업을 고발한다.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책갈피)은 한발 더 나아가, 이윤 추구를 최고의 행동 원리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감염병을 막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라 일갈한다. 사스와 메르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었지만,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윤이 남지 않아서, 또 선진국들의 문제가 아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책을 추천한 장은수 대표는 “감염병은 인간이 가진 힘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곧 권력의 문제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②성찰-비대면 사회, 뉴노멀 아닌 재앙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ㆍ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앞서 다가온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팬데믹이지만, 바이러스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교육의 양극화는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심화했다. 뉴노멀로 자리 잡은 비대면 세상만 해도 그렇다.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 시장의 등장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끔찍한 재앙일지 모른다. 박태근 팀장이 추천한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빨간소금)는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비대면의 삶은 누군가의 위험한 대면노동에 빚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돌베개)은 뉴노멀이란 거대담론 아래 묻힌 일상에 감춰진 부정의와 불평등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재택근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고, 돌봄재난으로 여성의 사회적 삶을 단절시키고, 집이 사무실이 되면서 발생하는 업무 비용을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 등 비대면의 어두운 구석을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비대면이 야기할 부익부 빈익빈의 극단적 심화”(장은수)를 잘 드러냈다는 평이다.
③발견-묻혀 있던 목소리들의 이야기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ㆍ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ㆍ타인에 대한 연민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덴스토리)은 “비대면 수업으로 등교를 하지 못한 당사자이면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존중 받지 못한 아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전했다”(박태근)는 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책으로 꼽혔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통제의 대상, 돌봄노동의 부담이란 관점으로만 다뤄진 ‘코로나 세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책이다.
김수현 MD는 반복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우울과 불안, 혐오와 분노, 고독과 무기력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추천했다.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로 자리 잡은 자살과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창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애도하는 법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두려움과 공포가 만들어낸 타인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연대와 존중의 감정으로 승화시킬 것을 제안한 ‘타인에 대한 연민’(알에이치코리아)은 방역이란 명분으로 배제와 낙인 찍기가 횡행했던 코로나 사태를 돌아보며 시사점을 던져준다.
④대안-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꿀 때

팬데믹 패닉ㆍ시간과 물에 대하여ㆍ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코로나 서적 가운데 특히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전망을 다룬 책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 ‘코로나 이후의 세계’(미디어숲), ‘오늘부터의 세계’(메디치미디어) 등이 교보문고와 알라딘이 결산한 판매량 상위 목록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 책들에서 국내외 유수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어온 문명의 서사를 바꿔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현대화에 대한 맹신을 거두고, 자연과 상호 협력할 것", "자본주의의 ‘야수성’에서 벗어날 것" 등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야만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시기”(‘팬데믹 패닉’, 북하우스)이지만, 그래도 변화의 씨앗은 싹트고 있다. 알라딘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생태학 분야의 도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고, 환경 생태 관련 책도 2배 이상 늘었다. 박태근 팀장은 “코로나 시대 두 번째 해로 기록될 2021년엔 이 같은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더 주목 받길 기대한다”며 기후위기를 숫자가 아닌 이야기로 풀어낸 ‘시간과 물에 대하여’(북하우스), 재활용 배출 안내서인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슬로비)를 추천했다.

코로나 사피엔스ㆍ코로나 이후의 세계ㆍ오늘부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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