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과제인 권력기관 개혁은 긍정 평가?
공수처 검·경 위 군림하는 또다른 권력 우려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보장엔 부정 평가
"모든 권력기관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오로지 국민을 섬기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2020년 12월 15일 국무회의 발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권력기관 제도화가 완성됐음을 선포했다. 대통령 말처럼 현 정부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었다. 기존 권력기관인 검찰·경찰·국정원의 권한을 분산하고, 신설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나머지 기관을 견제하도록 기능을 재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만 집착하다보니, 정작 권력기관 개혁의 또다른 요체인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각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개혁의 핵심' 공수처, 정권 견제 제대로 할까
정부 구상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와 기소 권한을 동시에 보유하며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검찰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검·경의 상위기구로 군림하면서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다른 수사기관에 고위공직자 범죄 첩보를 언제든지 이첩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검·경이 이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갖지도 않는다"면서 "이첩 권한을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다 가져가는 관계를 대등한 관계라고 하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차장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도 "현재 검찰은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수사지휘권·감찰권으로 견제를 하지만 공수처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꼬집었다.
공수처가 공무원의 위법행위만 처벌한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있다. 일반 국민들에 대한 검찰권 남용을 직접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검찰미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는 다른 기관들의 직무수행이나 권한 행사와 관련한 견제와 균형을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형사법을 위반했을 때 이를 통제하는 역할만 한다"면서 "국민들이 주로 피해를 보는 검찰권 오남용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권한은 분산했지만… 거꾸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
전문가들은 검찰이 축소되면서 상대적으로 권한이 비대해진 경찰의 미래도 걱정하고 있다.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로 나뉘긴 했지만 정보경찰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데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까지 받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할 만큼 덩치와 권한이 커진 데 비해 누가 이를 통제할 것인지는 방안이 없다"면서 "단순 심의기관에 그치는 경찰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경찰 조직의 인사·예산 등을 의결할 수 있는 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이 부여됨에 따라, 정보와 수사기능이 결합돼 권한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경찰이 수집할 수 있는 범위를 '치안정보'에서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 예방과 대응 관련 정보'로 바꿨지만,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라면서 경찰의 정보수집 기능이 확대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국정원 대공수사력ㆍ정보력 공백 우려
국정원이 수십년간 축적한 대공수사 노하우를 불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경찰에 넘겨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경찰이 이관 받을 준비를 갖췄다는 것뿐이지 조직의 능력이 현재의 국정원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20년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대공수사의 특성상 정보와 수사가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기관이 나눠져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은 "간첩수사라는 게 고구마 줄기 캐듯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한 가지 단서가 있으면 그걸 근거로 수사해서 다른 정보가 나오면 추가로 수집하고 연결해야 하는데 수사는 경찰에서 하고 정보는 국정원에서 다루는 식이 되면 일이 잘 진행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정권의 인사전횡 막을 길 없어”
공수처 설립 및 검찰개혁이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시대적 요구였던 만큼, 문재인 정부가 권력기관 개혁을 완성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엔 공수처도 없었고 법무부와 검찰이 한 몸이라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가 불가능했다"면서 "검찰의 기소독점권 폐지와 직접 수사권 축소돼 국민의 인권이 더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고, 국정원이 대외정보수집의 업무에만 집중하게 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야당의 반대권을 삭제하거나, 검찰을 상대로 '인사 물갈이'를 거듭해 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현 정부가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법 개정으로 정권 의중에 따라 처장 임명이 가능해졌다"면서 "공수처가 출범하기도 전에 입법 취지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윤호 교수는 "검찰 인사에서 볼 수 있듯 개혁의 표적이 '사람'에 있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면서 “검·경 인사권 모두 정치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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