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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을 한번에 바꾸면 탈이 난다

입력
2020.12.1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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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는 모습. 뉴스1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는 모습. 뉴스1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 류승범은 스폰서 건설업자와 황제 골프를 즐기다가 불쑥 한마디를 내던졌다. 스폰서가 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자신을 대하자 그러지 말라고 다그친 것이다. “하던 대로 해요. 그냥, 캐릭터를 한번에 바꾸면 적응이 안 돼요.” 검사의 충고는 새겨들을 만했다. 곧이어 스폰서가 골프장에서 죽은 걸 보니, 스타일을 바꾼 대가는 매우 컸다.

안타깝게도 스타일을 심하게 바꾸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도 존재한다. 잘 나가던 기자가 홍보맨으로 변신하면, 얼굴 표정부터 달라진다. 초반엔 물이 덜 빠져 몸이 뻣뻣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참 어린 언론계 후배에게도 고개를 숙인다. 본분에 충실한 변신이지만,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 때가 많다.

정치인은 아예 ‘변신왕’을 꿈꾼다. 여의도에 입성하면 일단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얼굴이 두꺼워지는 등 신체적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별한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치는 등 감정기복도 심해진다. 억지를 부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등 정신 세계의 변화도 눈에 띈다.

그러나 스타일을 한번에 바꾸는 것이라면, 기자도 정치인도 따라잡기 힘든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검사들이다. 검사가 변호사로 신분을 바꾸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단순히 직업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근본이 바뀐다.

최근 이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람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다. 그는 11일 ‘라임 사건’에 발목이 잡혀 친정 후배들에게 구속됐다. 법률 자문료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론 라임 펀드 판매를 위한 은행 로비 명목으로 2억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불법 로비스트였다는 거다.

그는 야당 정치인 이전에 전직 검사였다. 그것도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부장을 지낸, 정말 잘 나가던 특수부 검사였다. 그의 칼끝에 쓰러진 기업인과 정치인, 고위공무원은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법조인과 언론인은 윤갑근의 추락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구속에 놀랐고, 그의 변신에 또 한번 놀랐다.

‘라임 사건’에 등장하는 이주형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직 검사들에게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했던 사람으로 지목돼 기소됐다. 그 역시 알아주는 특수부 검사였고, 현직 때 평판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런데 퇴직 후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결국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처럼 변신의 귀재들이 즐비하다 보니, 우리나라 법조계에선 모범이 될 만한 검사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오사카고검 검사장을 지낸 벳쇼 오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특수부 검사였다. 퇴임 후 그가 주목 받은 이유는 특수통 검사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보여준 흔치 않은 행보 탓이었다. 그는 기업고문을 맡지도 않았고 형사사건도 수임하지 않았다. 검사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옷을 벗었다고 180도 입장을 바꿔선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형사사법은 공격과 수비를 자유자재로 교체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명언도 남겼다.

퇴직하기 무섭게 돈벌이에 혈안이 돼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 그런 변신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것이 지금 한국의 현직 검사들이다. 그러나 스타일을 한번에 바꾸면 탈이 나기 쉽다. 물론 보는 사람도 적응이 안 된다.

강철원 사회부장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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