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는 등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국무총리는 이에 관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지시했고, 13일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해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3단계 격상도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임을 강조했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 장관은 확산세가 지속되면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3단계 상향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들은 그간의 상황 전개를 돌아보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11월 중순 이후 지역사회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거리두기 단계 상향을 포함한 강력한 방역 조치를 통해 확산세를 차단해야 한다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1월 20일에는 대한감염학회를 비롯한 11개 학술단체가 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중대본은 이전 거리 두기 체계보다 완화된 2단계를 24일 수도권에 적용하는데 그쳤고 상황이 훨씬 악화된 12월 8일에야 2.5단계로 조정했다. 정부가 거리 두기 단계 격상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느라 코로나19 확산세를 꺾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 지닌 문제는 단지 시행 시기를 놓쳤다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거리 두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공병상 확충, 민간병상 확보, 보건의료인력의 확충, 훈련 및 처우 개선은 물론 노동자·자영업자·취약계층의 방역·노동환경 개선, 상병수당·유급병가휴가 도입과 실업부조 확대 등 사회안전망 확충,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확대, 거리 두기 단계 격상 시 보편적 재난지원금 지급과 임대료 인하·유예 등의 조치들이 연계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지난 3월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요구를 외면해 왔다. 2021년 예산 중 공공의료 확충 관련 예산은 지방의료원 4곳의 증축 '설계비' 15억원에 불과하다. 사회안전망 확충 예산도 미미하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나 공공보육 예산은 심지어 삭감되었다. 노동자·자영업자·취약계층의 방역·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보편적 재난지원금 논의는 언제나 재정건전성 이데올로기에 의해 발목 잡혀 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와 지침이 어떤 근거로 설계되었으며 관련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오리무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는 과학·사회·경제·정치적 요소가 혼재된 만큼, 그 설계와 시행 결정에는 감염병·예방의학·역학·공중보건학·응급의학·간호학·직업환경의학 그리고 시민들의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을 검토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자영업자·취약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협애한 경제 우선론만 부각되어 왔다.
이상의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새삼 거리 두기 단계 격상에 관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논하고 확산세가 지속되면 3단계가 불가피하다는 당연한 얘기나 반복하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이른바 K-방역의 민주성·투명성·개방성 원칙이 그저 홍보용 문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이번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결정부터 지켜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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