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신종사기 주의보’
새 상품 렌탈처럼 쓰다가 반품
전자제품 개봉 후 중고물품 담아 봉인
선(先)환불 후 물건 안 보내기도
사기 혐의 87명 수사기관行
#. 경기 수원시에 사는 김선영(45)씨는 온라인쇼핑으로 주문한 들통을 받고 두 눈을 의심했다. 들통 바닥에는 스티커를 떼어낸 자국이 선명했고 표면은 녹 슬어 있었다. 김씨는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상품이 정가보다 10% 정도 저렴해서 종종 구매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들통은 통상 살림 경험 있는 주부가 주문할텐데, 쓸 만큼 쓰고 비닐포장까지 해서 반품하는 비양심이 놀랍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대세가 된 온라인쇼핑 물결 속에 무료반품, 선(先)환불제도(택배기사가 환불 상품을 수거한 즉시 돈을 돌려받는 것) 등 고객 편의를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도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전자상거래(e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최근 30일 이내 무료반품이 가능한 서비스를 악용해 새 상품을 마치 렌탈 상품처럼 쓰고 반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반품 대신 쓰레기나 식품을 채워 보내는 일마저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어뷰징(abusing, 시스템을 악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라 부르며 특별 단속하고 있다.
김씨의 경험처럼 단돈 2만원에 양심을 파는 소비자부터 1억원대 사기행각을 저지르는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블랙컨슈머'의 유형은 다양하다.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비누, 샴푸 등 고객에게 제공할 어메니티 제품 값을 치르지 않다가 꼬리를 밟혔다. 온라인쇼핑으로 상품을 대량 구매한 뒤 ‘선(先)환불제도' 제도를 이용해 돈을 환불 받는 방식을 악용한 것이다. 정작 물건은 반품하지 않았다.
손재주를 범죄에 악용한 사례도 있다. 전자제품의 개봉 여부를 확인하는 봉인용 스티커는 뜯으면 흔적이 남아 개봉 후에는 교환이나 환불이 어렵지만 블랙컨슈머 앞에선 이조차 속수무책이다. 이 스티커를 손상 없이 뜯어 물건을 바꿔치기한 뒤, 감쪽같이 붙여둔 탓에 다음 소비자가 피해를 본 것이다.
B씨는 노트북이나 태블릿PC, 그래픽카드 등 고가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부품을 수십 차례에 걸쳐 구매한 뒤 다른 중고제품을 반품하는 방식으로 1억3,0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한 e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반품이 접수되면 물건 상태를 확인한 뒤 판매하는데, 육안으로 판별이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뜯어서 내용물을 바꾼 경우 다음 소비자가 열어볼 때까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참고 지켜본다… 속 끓이는 업체들
e커머스업체가 반품이 잦은 고객을 곧바로 ‘악성 소비자’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한두 차례 악의적 거래가 포착되면 해당 고객의 과거 구매내역까지 꼼꼼히 살피며 블랙컨슈머가 맞는지 확인한다.
e커머스업체 관계자는 “구매내역에서 악의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견되더라도 최소 6개월 이상을 모니터링하며 지켜본다”며 “문제가 심각한 경우 계정을 정지시키고 이후 법적 조치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설명했다.
도를 넘는 블랙컨슈머의 행태는 수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달 선환불제도를 악용해 사기 혐의를 받는 블랙컨슈머 87명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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