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반대를 누르고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사실상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법안 표결을 저지하려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민주당은 거대 여당의 자체 의석에다 범여권 의원을 끌어 모은 ‘수의 힘’으로 제1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셧다운’시켰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야당을 존중한다.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다’는 다소 동떨어진 이유를 들어 '소수당 의견 경청·다수당 독주 견제'를 위한 민주 절차인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표결로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것은 처음이다.
소수당 권리 필리버스터, 힘으로 셧다운
국회는 이날 저녁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 종결안’을 놓고 무기명 표결을 실시, 찬성 180표, 반대 3표, 무효 3표로 의결했다. 민주당(174석)과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 등이 협력한 결과다. 정의당은 ‘소수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강조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하면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필리버스터의 과도한 입법 지연을 막자는 취지로 만든 국회선진화법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는 약 60시간 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192시간 27분간 계속됐다.
민주당은 곧바로 국정원법을 처리했다. 필리버스터 종료부터 국정원법 개정안 가결까지는 단 ‘1분’이 걸렸다. 재적 의원이 187명, 찬성표는 187표였다. 국민의힘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이 안보 능력을 약화시킨다며 반대했다.
"야당 존중한다"더니 말 바꾼 민주당
민주당은 지난 10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야당을 존중한다”며 당분간 강제 종료할 의사가 없다고 공언했다. 최우선 과제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같은 날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나머지 쟁점 법안을 밀어붙여 ‘입법 독주’ 프레임에 불 붙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할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9일 국민의힘에서 공수처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나선 건 김기현 의원 1명 뿐이었다.
필리버스터는 민주당 예상과 다르게 굴러갔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58명 모두가 참여를 결의한 게 시작이었다. 윤희숙 의원은 11일 오후부터 12시간 47분 동안 반대 토론을 이어가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을 깼다. 국민의힘의 투쟁 의지가 치솟았고, ‘필리버스터 정국’이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22일부터 시작되는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개혁 법안의 처리 스케줄에 적신호가 켜지자, 민주당은 사흘 만에 말을 바꿨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한 중차대한 시기에 국회가 소모적인 무제한 토론만 이어간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이 뒤이어 본회의에 상정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 전단 살포·확성기 방송 금지법)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자로 태영호 의원이 나섰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하지만,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다시 종결시키겠다고 예고했다. 13일 필리버스터 개시 직후 민주당이 종결 투표를 신청했는데, 24시간 뒤인 14일 오후 8시52분 이후 종결 투표안이 본회의에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내로남불' 필리버스터
민주당의 태도가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맞불 토론자'로 나선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윤희숙 의원을 겨냥해 “책은 평소에 읽어야지 국회 토론 시간에 읽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직격했다. 윤 의원이 필리버스터 도중 프랑스 정치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책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으며 민주당의 개혁 입법 강행을 ‘전제정’이라고 비판한 것을 비꼰 것이다. 하지만 2016년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토론 때 민주당 의원들은 헌법 전문을 낭독하거나, 인터넷 댓글 수백 개를 그대로 읽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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