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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영화감독 김기덕씨가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으로 라트비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영화 작품에 내재된 폭력성과 여성혐오 등으로 평가가 엇갈렸던 그는 2018년 ‘미투’ 고발 이후 실제 삶의 폭력성을 두고서도 논란이 끝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큰 평가를 받지 못했던 김씨의 작품을 끌어 안았던 곳은 유럽 영화계였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201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등 유럽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게 되자 국내에서도 ‘영화계 거장’이란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그의 폭력성을 제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권위가 됐다. 그에게 성폭행 당했던 여배우들이 용기 있는 증언에 나서기 전까지 영화계 모두는 침묵의 공범이었다.
□영국 가디언지가 김씨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펑크 부디스트(Punk Buddist)’라고 부른 것은 그의 영화가 어떤 맥락에서 유럽에 받아들여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섹스, 폭력, 마약’과 뗄 수 없는 관계인 펑크가 불교와 연결되는 것은 불교권 국가에는 황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서구 펑크록 밴드들이 불교에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펑크록 계보를 이은 90년대 최고 록밴드 이름이 열반을 뜻하는 니르바나(Nirvana)였듯이. 이들은 대체로 펑크록과 불교의 공통점을 기성 질서(권위)에 대한 저항과 자유 정신에서 찾는다. 불교에 아나키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욕망의 원인인 아집으로부터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는 서구의 자유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가 그렇듯 유럽의 김기덕 수용은 그들의 맥락이다.
□굳이 불교를 적용하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은 그의 객사가 인과응보라는 반응이 더 자연스럽다. 국내에서 김씨의 작품이 예술성을 지닌다면 ‘소설은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스탕달의 예술론에 입각할 때인 거 같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이 한국 남성들 내면에 도사린 폭력성, 여성에 대한 왜곡된 환상과 권력 의식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궁창 같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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