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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Amaging Grace'

입력
2020.12.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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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존 뉴턴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를 쓴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를 쓴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17,18세기 유럽의 앞선 근대 민족(국민)국가들은 중상주의 해상무역으로 경제적 터전을 구축했다. 무역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군력이 관건이었고, 군선을 짓고 군대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길드 상인들에게서 걷는 세금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유럽의 왕실들은 직접 '대주주'로서 바다를 누비곤 했다. 왕실 금고에 얼마나 많은 금이 쌓여 있는지가 그 나라의 힘과 위상을 좌우하던 시절이었고, 곧 지상(至上)의 윤리였다.

허다한 무역 물품 중에서도 가장 이윤이 큰 상품이 흑인 노예였다. 광산에서 금을 캐려고 해도 일손이 있어야 했고, 담배와 사탕수수를 재배하려고 해도 인력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아프리카는 거대한 노예 광산이었고, 노예 무역은 국가적 사업이었다.

영국이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의 노예무역권을 빼앗아 독점하면서, 18세기 노예무역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1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던 때였다. 면방직공장을 돌리려면 원면이 필요했고, 그건 신대륙의 광대한 면화농장에서 재배해야 했다. 로버트 램의 '서양문화의 역사'에 따르면, 미국 남부 농장의 흑인 노예는 1790년 69만7,000명에서 1861년 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영국 의회가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가결한 것은 1807년이었고,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 가사를 지어 찬송가 'Amazing Grace'를 발표한 것은 1779년, 종교인들이 '노예무역폐지협회'를 설립한 것은 1780년이었다.

존 뉴턴(John Newton, 1725.8.4~ 1807.12.21)은 선원학교를 나와 10대 때부터 노예무역선에서 일하다 훗날 선장까지 지낸 노예 상인이었다. 그는 만 30세 되던 1755년 성공회 사제가 된 뒤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며 노예 폐지 운동에 앞장섰고, 저 노래로 '한때 길을 잃었던 나를 인도해주신' 신의 은총을 찬미했다. 하지만 '어메이징'하게도 미국 남북전쟁의 남군들도 군가처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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