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음에도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K방역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달여 전만해도 100명 언저리였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배가량 급증하면서 3T(테스트ㆍ추적ㆍ치료)의 앙상블로 정의되던 K방역은 기능을 상실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21세기 최악의 해로 기억될 2020년의 마지막 해가 곧 떠오르겠지만, 희미해진 희망의 빛은 살아날 기미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지만, 지쳐 쓰러지는 의료진과 갈 곳 없어 컨테이너 병동에 몸을 누이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과연 누가 이 낙관에 동의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의 국내 상륙 이후 정부는 강압적인 경제ㆍ사회 봉쇄 없이 대확산 위기를 극복해 국제 사회로부터 방역 선진국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이제 홍수로 무너진 방죽 앞에 선 이재민처럼 벌벌 떠는 처지가 됐다. 자신감에 찼던 방역당국마저 “거리두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3단계 밖에 방법이 없다” 등 비관적인 발언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꺼내들었지만 확산세가 잡히지 않는다는 난처한 비명이다. 쓰나미처럼 빠르게 덮쳐오는 코로나19가 누구의 대문을 두드릴지 알 수 없는 공포의 시간. 확진자 1만명이 늘어나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는 바이러스의 무서운 확산 속도 앞에 지난 2, 3월 대구ㆍ경북 대유행을 이겨냈던 우리 국민의 집단기억은 빛바랜 훈장처럼 퇴색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지난 대유행 당시에는 그나마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라는 '감염원'을 특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 하나를 지목해 표적 방역할 수도 없으며, 이로 인해 K방역의 가장 주요한 요소인 '추적(trace)'이 곳곳에서 무너진 결과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지난 1,2차 대유행의 잔불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마저 내놓는다. 또 다른 이유는 뭉툭해진 국민의 경각심이다. 지난 1년여간 감염되지 않고 생존했다는 데서 비롯한 자신감이 방역망을 뚫는 날카로운 송곳이 됐다. 정부가 거리두기 격상 신호를 낸 12월 첫 주말 수도권 이동량은 오히려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들 이유보다 치명적인 위기의 책임은 사실 정부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들어 감염병 전문가들은 경제와 방역의 무게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정부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묵살해 유행을 키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막혔다는 속내를 잇달아 토로했을 정도다. "거리두기 단계를 서둘러 내리면서 유행이 커졌다" "병원에 반협박하는 정부, 계획 안 세우고 뭘 했나" 등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당국을 비판하는 의료인이 적지 않다.
얼마전 이재갑 한림대병원 교수는 스스로 '카산드라'로 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언'이 설득력을 잃어, 트로이 멸망을 막지 못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의 운명과 닮았다는 자책이었다. 감염 확산세보다 한 발 앞선 방역망 강화.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미 힘을 잃은 K방역의 공식에 집착하지 말고 의료 전문가들이 비운의 카산드라가 되는 일을 막아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주저앉힐 '트로이 목마'로 일어설 위기의 시간이 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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