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석 ‘약령시사람들’ 대표
“양 사장, 이럴 수 있습니까. 일단 한의원으로 오시오.”
2007년 무렵이었다. 경산의 모 한의사가 양대석 ‘약령시사람들’ 대표에게 성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 한의사는 양씨의 한약재가 다른 업체보다 비싸다면서 “나에게 사기를 쳤다”고 몰아붙였다. 양씨는 그가 적정가라고 생각하는 타 회사의 약재를 마당에 쏟아부은 뒤 수입산과 국산을 가려냈다. 거의 반반씩 섞여 있었다.
“3대째 경옥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예와 제 양심을 걸고 국산 재료만 씁니다. 돈만 쫓는 장사치가 아닙니다.”
그날 이후 양씨는 아예 한의원 거래를 끊었다. 그렇게 한약 도매업에서 손을 떼고 최고의 경옥고로 소비자를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양씨는 현재 지역 최고의 경옥고 전문가이자 할아버지 때 터를 잡은 약령시에서 대구약령시 보존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약령시 파수꾼을 자처하고 있다.
‘27년을 먹으면 360살을 살고 64년을 장기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500살까지 살 수 있다.’
‘동의보감’에 담긴 경옥고의 효능이다. 말 그대로 무병장수를 위한 한약이란 설명이다. 양씨는 “경옥고를 먹는다고 500살까지 살런지 안 살런지는 모르지만, 최고의 경옥고를 만들려면 국내산 천연재료만 써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옥고에는 인삼, 꿀, 복령, 마 등이 들어간다. 만드는 시간과 준비하는 정성이 오래 걸린다. 제조 방법에 따라 약효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최상품 경옥고는 윤기가 흐르며, 제품 자체가 물기를 머금고 있어 수막이 형성되지 않는다.
‘약령시사람들’ 공장내부에는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청동 중탕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제품을 만드는 데 수일이 꼬박 걸리는 고유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한 공정 기술이다. 양씨는 경옥활력소를 바탕으로 환류, 차류, 한방음료, 의약외품 등 130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기억의 경옥고
“경옥고를 생각하면 한 겨울에 꽁꽁 언 손으로 일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경옥고 재료 중에 생지황이 있다. 추수가 늦은 작물이다. 어머니는 생지황을 언 땅에서 채취해 찬물에 씻고, 짓찧어 즙내는 일을 혼자서 다 하셨다. 장작불 가마솥에 단지를 넣어 중탕으로 3일 밤낮을 고아서 우물물에 하루 종일 담갔다가, 다시 꼬박 하루를 달여서 하루를 식혔다. 한의사였던 부친은 어머니가 만든 경옥고를 단지에 담아 손님에게 내어주었다.
양씨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 옆에서 한약재를 보고 자랐다. 4남4녀 중 7번째인 양 씨는 23년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부친 타계 후 35세(1994년)에 가업을 이어받았다. 한약재료상을 하며 한의원에 경옥고를 납품했다. 모 한의원에서 “경옥고를 제대로 만들었다”며 “전량을 팔아주겠다”고 했다. 1년을 거래하던 어느 날, “경옥고 시연을 할 수 있게 기계 세팅을 해 달라”고 했다. 이후 그는 그 기계를 사용해서 직접 경옥고를 만들어 판매했다. 신의로 거래했는데 양씨는 배신을 당했다.
당시 모 한의원에서 판 경옥고로 소송이 붙은 사건이 있었다. 그 한의사는 경옥고 잘 만드는 집을 수소문해서 양씨를 찾아왔다. 한의원에서는 양씨가 1년 팔 물량을 1달 반 만에 팔아치웠다. 양씨는 기존 거래처에 물건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심상 수입산 재료는 쓸 수 없어 판매중단을 선언했다. 국내산 재료는 11월에야 나오기에 내년에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당시는 이유도 모르고 부친의 뜻대로 무조건 국산재료를 써야 한다고 고집했다. 다음해에 3~4배의 경옥고를 만들었는데, 거래처는 공백기를 틈타 다른 업체에서 싼값에 만든 제품을 사용했다.
어떻게 팔 것인가.
양씨는 ‘유효기간이 있는 경옥고를 어떻게 판매할까’를 고민했다. 카이스트에 문의를 했다. 성분 분석 결과 양 씨가 만든 경옥고에서 슈퍼물질이라 일컫는 베타글루칸이 93%(타사 제품은 18~22%)가 함유된 것으로 나왔다. 항암, 항염, 항치매, 보습 효과 등도 입증되었다. 경옥고를 다른 제형의 제품으로 상품화시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양씨는 일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1995년에 회사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1,200만원을 투자했다. 당시 가게 근처의 300평의 땅이 300만원에 팔리던 시절이었다.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살아있는 홈페이지를 운영했다. 500여 가지의 약초 효능과 시세, 민간요법 등 3,600페이지에 달하는 정보를 총망라했다. 온라인의 힘은 막강했다. 하루에 26여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덩달아 제품 판매로 이어졌다. 옳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냈다.
2005년 대구시 제안으로 20억원을 모아 컨소시엄을 거친 뒤, 회사를 설립해서 약령시 대표 브랜드로 만들자는 사업 계획을 추진했다. 공모전에 80여개의 제품이 출품됐다. 양씨의 제품이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진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6개월을 기다리다 결국 2006년 사비를 들여 법인회사를 설립했다.
약령시장에는 한의원, 한약방, 한약도매상, 약업사 등 여러 한방업체가 공존하면서 업종 간에 배타적인 갈등구조였다. 약령시장에는 밥벌이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약초 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 씨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학습을 독려했다. 종사자의 50%이상이 대학졸업장을 따도록 도왔다. 컴퓨터를 도입해서 약재 유통 등 네트워크를 체계화했다. 기득권 눈에 양 씨가 고울 리가 없었다.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양 씨의 아이디어가 채택됐지만 이단아로 분류될 뿐이었다.
양 씨는 초코칩형태의 쿠키, 경옥고 술, 원기소, 진액엑시스 등을 제품화했다. 신제품을 꿈꾸며 공장을 확장하고 제품을 만들었지만 판로를 잃고 재고가 쌓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대구시에 자문을 구했다. 2007년 서울시 코엑스에서 열린 내나라박람회에 부스 전시에 참석했다. 뚝심과 의리로 소문난 양 씨를 위해 연예인축구단에서 부스를 찾아왔다. 그 덕분에 부스는 4일간 대성황을 이루었고 대구시 관광과도 대박이 났다. 양 씨는 그때부터 박람회와 전시회에 참석하며 경옥활력소 제품과 대구약령시를 홍보했다. 대구시 관광코스에 약령시 전시회 견학의 기회도 마련했다.
달콤한 뒤에는 독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 업체에서 수입 오가피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 일이 있었다. 단속에 걸려서 부도가 났다. 6억원의 어음을 갖고 있었던 양 대표는 번 돈을 다시 쏟아 부었다.
2007년 홈쇼핑 판매 준비를 했다. 구청에서 한약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허가를 차일피일 미뤘다. 허가는 당일 판매 시간에야 났고 홈쇼핑은 물거품이 되었다. 엉뚱한 송사 건에 휘말려 4~5년의 허송세월도 보냈다. 2017년에 찾아온 중국 수출 기회는 중국의 사드 보복 앞에서 무너졌다. 올 초 대구를 덮친 코로나19사태로 ‘대구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품이 잇달았다. 미국, 캐나다 수출 길도 막혔다. A기업과 대량 물량을 계약했으나 멈춰 섰다.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가업을 이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3대째'라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다.
약령시 보존위원회 이사장
양 씨는 약령시 토박이다. 2019년 약령시 보존위원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해동역사(한치윤, 조선후기 실학자)에는 약령시가 고려시대(918~1392)부터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약령시는 700~1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대구약령시에는 350~360여개 점포가 있었는데,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현재 반으로 줄었고 올해도 3개가 줄었다. 한약재를 다루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도 타업종에 비해 높다. 양 씨는 한방 문화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공익에 앞장섰다. 마당발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비를 들여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약령시에는 연 20만 명이 방문한다. 약령서문은 상시 주차단속구역이고 버스주차 시설이 없다. 양 씨는 “방문객이 3~4시간만 머물도록 한다면 약령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합천에 한방 6차 산업 계획
3년 전 합천군 야로면 해인사 인근에 약령시사람들 합천 공장을 세웠다. 양씨는 대구 약령시 축제 프로그램의 70%를 기획한 사람이다. 약령시 아이템을 합천에 적용해서 한방체험타운을 만들 계획이다. 250여종의 약초를 재배하여 한방타운 내방객의 먹거리로 제공하고 황토방, 족욕, 카페, 식당과 연결한 힐링센터를 구상·진행 중이다. 해인사 관광객을 흘러가는 관광객이 아닌 머무는 관광객으로 유치해 합천을 항노화 6차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젊은이들이 한방을 외면합니다. 현대인과 젊은 층을 위한 트렌트에 맞는 한방 제품을 연구·개발하겠습니다. 한방의 우수성을 알리고 경옥활력소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지구촌 사람들의 건강의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씨는 대한체육회 장애인양궁협회 수석부회장 등 여러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무료급식을 비롯해 연간 2,000만원 상당의 경옥활력소와 공진단 등 한방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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