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칵 세리머니하는 손흥민. AP 뉴시스
명색이 지상파 방송사 소속 축구해설위원인데, TV에서 축구 중계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방송가에서 스포츠는 돈 벌기 힘든 콘텐츠로 분류된다. 과거와 달리 시청률도 높지 않고 광고 수주도 쉽지 않다. 게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인기 스포츠의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라, 지상파 TV 편성표에서 스포츠의 비중은 이미 매우 낮아진 상태다.
경영난에 봉착한 방송사들에, 거액의 중계권료를 지불하고도 수지 타산 맞추기 힘든 스포츠 콘텐츠는 애물단지다.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스포츠의 가치가 외면받는건 안타깝지만, 매년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드러나는 어마어마한 적자 규모 앞에선 모든 게 무의미하다. 국내와 해외 시장이 평가하는 스포츠 콘텐츠의 가치 격차가 극적으로 좁혀지지 않는 이상, 국내 스포츠 중계 방송 규모가 확장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한 개인 방송에 집중하게 된다. 축구는 개인 방송 콘텐츠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각기 다른 사정으로 제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축구는 정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두 분야 모두, 대단한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기만의 의견이나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물론, 어느 수준 이상의 대화에는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고정된 답안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은 자유로운 대화가 오가는 개인 방송에 어울리는 특징이다.
TV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때와 다른 점은, 대화 상대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이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는 TV 중계와 달리, 개인 방송은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가 원하는 이야기나 관심사가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지금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나 '애정'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신속하게 알 수 있다.
요즘 축구를 보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거의 대부분 손흥민에게 쏠려 있다. 많은 사람이 손흥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함께 웃고, 다치거나 부진하면 함께 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인 방송을 시작할 무렵, 다양한 축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던 애초의 목적은 희석되어 버렸다. 손흥민의 '월드 클래스'급 맹활약이 1년 넘게 이어지자,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손흥민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손흥민의 활약에 열광하는 풍경은 과거 박찬호나 박세리 선수의 전성시대를 연상시킨다. IMF 때 박찬호나 박세리가 그랬듯, 코로나 시대의 상처받은 영혼들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연일 골을 터뜨리며 활약하는 손흥민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추위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면서 떠날 곳도 만날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갑갑한 현실에서, 세계 최고 무대를 헤집는 손흥민의 활기찬 플레이에서 많은 사람이 위안을 얻는다.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의 주말 경기는, 코로나19로 미뤄진 빡빡한 일정과 주중에 열리는 국제 대회(유로파리그)의 존재로 인해 우리 시간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심야 시간에 대부분 열리고 있다. 손흥민의 골 소식과 함께 밝아오는 월요일 아침은 더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시청자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월요병마저 없애버린 손흥민의 활약,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듣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서도 환하게 웃는 얼굴들 사이에서 새삼스레 스포츠의 가치를 곱씹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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