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K리그1(1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울산 골키퍼 조수혁(33)이 아시아 무대에서 펄펄 날고 있다.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29)가 오스트리아 A매치 원정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곧장 귀국한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면서 울산을 4강으로 이끌었다.
조수혁은 10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베이징 궈안(중국)과 8강전에서 전ㆍ후반 90분 동안 상대의 맹공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2-0 승리를 지켰다. 이날 전반에만 두 골을 몰아 넣은 ‘골무원’ 주니오(34)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조수혁의 '선방쇼'가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날 경기 주도권은 베이징에 있었다. 베이징은 슈팅 수 22-7, 이 가운데 유효슈팅에서는 8-3으로 앞섰는데, 조수혁이 뚫렸다면 경기 분위기는 순식간에 베이징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특히 후반 21분 베이징 아우구스투의 슛을 몸을 던져 막아내고, 24분엔 상대 크로스를 펀칭으로 막아낸 게 결정적이었다. 팀이 8경기 19골로 무패(7승 1무) 행진을 달리며 4강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숨은 공신이다.
그간 조수혁이 울산에서 실력발휘 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2008년 FC서울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 13년이 흘렀지만, 총 출장 수는 59경기에 그쳤다. 한 해 평균 4.5경기에 뛴 셈이다. 이마저도 인천 유니폼을 입었던 2016년(26경기 출장)을 제외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2010년과 2012~2014년, 그리고 울산에 조현우가 합류한 올해까지도 시즌 내내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서브골키퍼였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으며 기회를 엿봤다. 물론 서브골키퍼에게 기회가 온다는 건 팀에게는 상당한 위기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조수혁은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하며 아시아 무대를 평정하고 있다. 당초 구단은 코로나19에서 완치된 조현우의 대회 합류를 검토했지만, 최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선수 안전을 우선시한 조치였다.
결국 조수혁은 울산의 ACL 여정에서 끝까지 뒷문을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팀이 승승장구하면서 선수단은 그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김도훈 감독은 8강전을 앞두고 “조현우가 합류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왔던 조수혁이 잘 해주고 있다”면서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도 다른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어 문제 없다”며 믿음을 보였다.
조수혁은 베이징과 4강전을 마친 뒤 울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팬들이 응원해 주셔서 좋은 결과로 끝냈다”며 “팬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수들은 2012년 이후 8년 만의 아시아 정상,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원삼성이 같은 날 열린 비셀 고베(일본)와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K리그 유일의 4강 진출팀이 된 울산은 13일 오후 7시 고베를 상대로 결승 진출을 다툰다. 승리하면 서아시아 권역에서 먼저 결승에 올라 있는 페르세폴리스(이란)와 19일 우승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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