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백신접종일을 V-day라고 명명하는 것을 보면 SF영화에서 외계인이나 전염병과 싸워 이기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물론 현실은 좀 달라서, 앞으로 갈 길은 아직 멉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위세를 잃게 되면,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까요? 많은 분석가가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 가운데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것은 무엇인지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는 회의 방식과 외식업의 변화를 꼽습니다. 화상회의와 화상교육을 경험한 기업들은, 전통적인 대면회의나 교육보다 꽤 효율적일 뿐 아니라 종종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화상회의로 인한 피로가 대면회의보다 더 크다는 불만도 많지만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줌을 비롯한 화상회의 솔루션들의 주가가 멈추지 않고 폭등하는 이유입니다. 외식업의 변화도 뚜렷합니다. 레스토랑의 고전과 배달의 폭발적 증가는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도 삼삼오오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대신 분주히 오가는 라이더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혼밥 추세와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배달서비스업체들을 주목하게 합니다. 최근 미국판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어대시가 무려 70조원의 가치로 상장한 것이 상징적입니다.
사람들은 줌이나 도어대시와 같은 기업들이 운이 좋았다고 여깁니다. 이들 기업의 창업자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저 운 좋은 일확천금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줌의 창업자 에릭 유안은 시스코의 임원자리를 내던지고, 진짜 고객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모든 외부 회의를 줌으로 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작업을 십년 동안 꾸준히 했습니다. 도어대시의 창업자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배달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창립 초기에는 매일 배달을 했다고도 합니다. 스탠퍼드 MBA, 유명 컨설팅회사 출신이라는 허명에 매이는 대신, 작고 귀찮은 실무를 통해 고객과 시장을 익힌 셈입니다. 대표이사가 십여년 동안 직접 배달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창업자들에게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배달앱 띵동의 창업자 윤문진 대표는 회사를 상징하는 꿀벌옷을 입고 배달을 다녔고, 마켓컬리의 김슬아대표는 지금도 회사가 취급하는 모든 음식을 먹어보려고 애씁니다. 출장차량관리서비스 차케어의 이동희 대표는 컴퓨터공학도인데도 세차중개서비스를 기획하면서 몇 달 동안 세차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직접 출장세차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페이스북이 수조원의 가치에 이르렀을 때까지 저커버그가 직접 코딩을 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좋은 기업에는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고객과 시장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하는 경영진이 있습니다. 의사 결정부터 고객 접점까지가 너무 멀어진 기업들은 공룡이 되어 시장에서 밀려납니다. 시장에 큰 변동이 생길 때 이런 변화는 더욱 급격하게 일어납니다. 종이와 보고서로만 일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그래서 언제나 위험합니다. 반드시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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