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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5년의 실험’에서 얻은 교훈

입력
2020.12.11 0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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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4.7 재보궐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 접수처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시스

4.7 재보궐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 접수처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시스


대한민국 수도와 제2도시의 시장은 지금 ‘임시직’이 맡고 있다. 시민들의 투표로 뽑힌 사람이 아니라 전직 시장이 임명한 부시장이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퇴진한 부산시는 8개월째 시장이 공석 중이다.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리를 비운 서울시는 5개월째 시장실이 비어 있다. 한 나라의 1ㆍ2대 도시 시장이 동시에 공석인 이 기막힌 현상은 내년 4월 열리는 보궐선거까지 이어진다. 부산은 거의 1년, 서울은 8개월간 대행 체제로 시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과거엔 4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 재보궐 선거를 했지만, 201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애 따라 단 한 차례(4월)만 재보선을 치른다.

물론 두 도시의 권한대행은 무난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선거를 거치지 않은 시장이라는 한계까지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 단적인 예가 서울의 그린벨트 문제다. 박 전 시장이 “미래 세대의 것”이라며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던 서울의 그린벨트는, 중앙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이용됐다. 정책을 흔드는 시장(市場), 시민들의 반대 여론, 중앙정부의 압박, 정치권의 외풍 등에 맞서 든든하게 바람막이를 해 줘야 할 ‘선출직 시장’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은 이념이나 소속 정당을 떠나 해당 지자체 구성원 모두에게 뼈아픈 일이다.

단체장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생기는 피해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재보선이 축소되면서 시민의 참정권 자체가 제한당했다는 점이 심각한 부작용이다. 공석 사태를 촉발한 지자체장이나, 그 후보를 공천한 정당에 분노를 표출하거나 잘못을 심판할 기회 자체가 1년 가까이 유보된 셈이다. 주민 여론이 적시에 반영되지 못하고, 최대 1년이란 기간 동안 걸러진 후 뒤늦게 나타나게 되는 부작용이다.

자신이 뽑은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이 계속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시장-부시장이 ‘러닝메이트’ 형식으로 투표에서 검증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장이 부시장을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언제든 ‘임시 시장’이 될 수 있는 예비 후보를 검증할 기회도 없다.

제도가 이렇게 된 것은 결국 돈 문제 때문이었다.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는 최대 수백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초석인 지방자치제도를 운용하면서 그 ‘본질’보다 ‘가격’을 우위에 둔 결과, 참정권이 훼손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다행히 국회가 최근 재보궐 선거를 다시 1년에 2회로 환원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하며, 내년부터 지자체장을 잃은 지역 주민들의 선택 권한은 강화된다. 그러나 돈을 아끼기 위해서 섣불리 시작했던 ‘무모한 실험’이 남긴 오점을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도 시장이나 도지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자진사퇴를 하거나 당선 무효형을 받는 사례는 반복될 것이다. 지자체장 공백의 폐해를 절감했던 일을 계기로, 시장ㆍ도지사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는 지방자치 행정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방안도 생각해 볼 시점이다. 단체장과 부단체장을 한 세트로 묶은, 러닝메이트 방식의 선출도 논의해 볼 만하다. 한 사람에 쏠린 과도한 권한을 배분해 전횡을 방지하고 동시에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정통성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세금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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