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민주당은 신종 보수 정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독자 후보 낼 것”

입력
2020.12.10 20:00
24면
0 0

[정영오의 직격] 김종철 정의당 대표

지난 7일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이 집권 3년만에 신종 보수정당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지난 7일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이 집권 3년만에 신종 보수정당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김종철 정의당 대표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날은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공정경제 3법 처리를 강행하면서, 여ㆍ야가 합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미루기로 한 지난 7일이었다. 정의당은 이에 맞서 비상농성에 돌입했다. 애초 인터뷰는“시대에 맞지 않는 진보진영의 오랜 금기를 깨겠다”는 김 대표의 참신한 주장에 집중하려 했지만, 급박하게 진행되는 현안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국회 상황에 대한 추가 문답은 문자로 주고받아 정리했다.)

_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여당 약속이 공수표가 됐다.

“추측하자면, 정기국회에서 공수처법과 공정경제 3법 처리가 마무리되면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골치 아픈 이슈만 남게 된다. 중대재해법, 낙태관련 모자보건법 개정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냥 말로만 하겠다고 하고 처리 안 하겠다는 속셈이었던 거 같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다시 약속하기는 했으나, 정말 괘씸한 처사다.”

_ 공정경제 3법과 중대재해법 모두 기업들이 반대하는데, 민주당은 왜 여ㆍ야 3당이 합의한 중대재해법에 대해서는 소극적일까.

“민주당이 과거 10년 동안 야당으로 있으면서, 보수 집권당에 맞서기 위해 진보 진영 의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용 자세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표면적이었다. 집권하고 나서 기업과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 보니 논리적으로 그들에게 흡수된 것이 아닐까. 오랜 기간 노동계에 몸담았던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원장조차 중대재해법 처리에 소극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산업안전관리자를 지정하기만 하면 최종 책임자인 대표이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 중대재해법의 핵심은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게 해야 산업현장의 안전이 지켜진다는 것이다. 어려운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의 절반가량이 추락사다. 건설 현장에는 추락 방지 그물망만 설치하면 막을 수 있는 사고도 많다. 하지만 하청ㆍ재하청이 이어지는 우리 건설업 현실에서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재하청 노동자이고, 이런 재하청 기업은 안전 그물망을 설치하기 위해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감수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 결국 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몰고,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은 권한도 없는 안전관리자에게 떠넘긴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공정경제 3법은 재계가 총출동해 반대하는 바람에 국민 이목이 쏠려 그냥 후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결국 ‘3%룰 완화’ ‘공정거래위 전속 고발권 유지’ 등 재계 요구를 대폭 반영해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 3년만에 신종 보수정당이 돼 버렸다.”

_ 공정위 전속 고발권은 정무위 법안심사 때는 폐지하겠다 약속해 캐스팅보트를 쥔 정의당 배진교 의원도 찬성했으나, 전체회의에서 재계 입장을 반영해 일방적으로 되살아났다.

“민주당이 정무위 안건조정위에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전체회의에서는 다시 살려놓은 것은 사기적 행태다. 민주당이 정치 도의를 땅에 떨어뜨렸다. 원내대표 사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공정경제 3법 처리에 정의당도 반대표를 던졌다.”

_ 야당의 공수처장 추천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통과도 향후 공수처의 성공적 정착에 큰 부담이 되지 않겠나.

“국민의힘 반대를 뚫고 공수처를 출범시키기 위해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수처의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할 대안을 마련해야 했는데 지금 법안은 중립성, 독립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려가 크다.”

_ 정의당 대표가 되자마자, 보수진영 단골 주장인 보편증세 필요성을 꺼내 들어 관심을 모았다.

“100명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메뉴가 같고 다 충분히 잘 먹었더라도 주머니 사정에 따라 밥값을 조금씩이라도 분담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그런데 우리나라 근로소득세는 100명 중 40명이 밥값을 안내는데, 점점 늘어나는 밥값을 굉장히 잘 버는 몇 명에게서만 더 걷으려 한다. 100명의 식사가 계속 유지되려면 정말 못 사는 7, 8명에게만 돈을 받지 않고, 그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계층은 적어도 몇 천원이라도 내야 한다. 복지와 세금은 사회연대에 기반해야 한다.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편누진 증세’말고는 돌파구가 없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통과된 공수처법은 기구의 중립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오대근 기자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통과된 공수처법은 기구의 중립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오대근 기자


_ 보편 증세 말고도 연금개혁, 공공부문 직무급제, 노동개혁 등을 깨고 싶은 ‘진보의 금기’라고 말했다. 낡은 진보의제를 깬다는 것은 계급론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것인가.

“그렇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는 근로계약서를 쓰고 사용자에게 종속된 동시에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플랫폼 경제가 확대되면서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부분에서 일자리가 늘고 있다. 그리고 일터도 노동자를 한 곳에 다 몰아넣고 규율에 따라 노동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아닌 시대로 가고 있다. 소비자의 욕구 역시 물질적 상품 소비에서 다양한 문화적 경험 확대 등으로 발전할 것이고 따라서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는 조직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결국 노동조합이 보호할 수 없는 분야는 사회적 보호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_김 대표가 제안한 ‘전국민 소득보험’을 말하는 것인가. 자세히 설명해 달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 정의당이 주력할 다음 의제가 ‘전국민 소득보험’이다.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전국민 고용보험’을 프리랜서, 플랫폼, 자영업자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지금 고용보험 가입자는 전체 취업자의 49%다.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나머지 절반은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로 구성된다. 이렇게 확대하려면 명칭을 고용보험으로 유지할 수 없다. 이들이 고용 상태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직 상태에 대한 별도 규정이 있어야 하고, 고용보험금 중 사용자 분담분은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가 돼야 한다. 정의당 추산 결과 관련 필요 예산은 5조~7조원 정도가 될 것이다. 민주당도 긍정적이다. 전국민 소득보험 도입으로 사회안전망이 보강되면 노동 개혁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_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도 중요하다.

“공공부문 고용이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서비스 등 공공부문이 책임져야 할 일자리가 더 늘어나야 하고, 경기 변동에 따라 불안정한 고용 상황의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부분 임금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용을 늘릴 수는 없다. 한국납세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공공부문 임금이 민간의 175%나 된다. 스웨덴이 96% 수준이라 공공부문 비중이 커질 수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공공부문 취업에 목을 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공공과 민간간 일자리 이동도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아 공공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그렇다고 당장 공공부문의 정규직이라든가 공무원 이런 사람들의 임금을 떨어뜨릴 순 없지 않나. 기존 공공부문 정규직과 새롭게 편입된 직무급에 들어간 사람들의 임금 격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장기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_ 30년이 필요한 장기 계획이겠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 조금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사실 이런 개혁은 정부가 구체적 계획을 내놓고, 10년 20년 후 미래세대가 좀 더 좋은 사회에서 살게 하기 위해 장기 개혁을 시작한다고 선언해야 하는 사안이다.”

_ 말씀하신 자괴감은 중소 정당 정의당의 한계를 말하는 듯하다. 정의당이 중요한 정국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제는 집권을 향해 지지층을 넓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의당이 상정한 지지세력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다. 모든 사회적 의제에는 약자가 존재하고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이다. 지금은 산업화 시대처럼 계급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약자와 강자를 나누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막연하게 들려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비정규직 보호 차원에 그치지 말고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조세 개혁, 연금 개혁, 지역불균형 개혁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호응하는 사람들은 지식인들뿐이었다. 정부 여당도 야당도 관심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 것이다.”

_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정의당의 모델인 것 같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가 기본틀이고 여기에 생태ㆍ성평등도 중요한 가치다. 요약하면 ‘성평등 생태 복지국가’가 정의당의 목표다. 역사적으로 진보정당이 힘이 있는 나라가 대부분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_내년 재보궐선거에 독자 후보를 낼 것인가.

“그렇다. 두 가지 이유인데 우선 이번 보궐선거 원인제공자가 민주당이기 때문에 민주당과 단일화는 말이 안된다. 두 번째는 장기적으로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후보를 내고 심판받으려 한다. 고무적인 점은 과거 정의당 지지층 중에서 현 정부를 지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는데, 최근 들어 현 정부 지지 철회 비율이 절반 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이 국민의힘 같은 보수 정당에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변한나 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