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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국내 클래식 한계 드러났지만… 음악이 있어 희망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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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국내 클래식 한계 드러났지만… 음악이 있어 희망도 꿈꿨다"

입력
2020.12.11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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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 류태형 허명현?클래식 평론가 3인이 돌아보는 2020년 음악계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류태형(왼쪽부터), 황장원,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올해 공연계를 결산하며 대담을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류태형(왼쪽부터), 황장원,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올해 공연계를 결산하며 대담을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한 경자년은 연말인 지금도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다. 모두가 힘들었던 올 한 해, 클래식 음악계도 피해가 컸다. 손꼽아 기다렸던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공연이 무산됐고, 누군가는 무대 위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유럽 흑사병이 돌았던 14세기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은 것처럼, 음악인들이 절망 속에 침잠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사회에 위로의 음악도 헌정했다. 한국일보는 황장원(48) 류태형(48) 허명현(29) 클래식 평론가를 만나 팬데믹을 맞은 2020년 클래식 사회를 돌아봤다.


-코로나19로 클래식 공연의 민낯이 드러났다

허명현(이하 허): 클래식 음악이라는 게 얼마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왔는지 밝혀졌다. 국가 지원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곳이 부지기수다. 1년도 안 된 기간에 해고된 음악인도 많다. 이게 모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기존의 소수 팬층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본고장인 유럽조차도 현실이 그렇다.

황장원(황): 클래식계는 지금까지 그들만의 음악을 하는 생태계 속에서 안주해 왔다. 요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음악,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런 보수적인 시장이 유지되려면 그나마 기존 관객이라도 꾸준히 공연장에 와야 하는데, 공연장이 닫히면서 그 전제가 무너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한편으로는 공연계가 온라인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계기도 됐다

류태형(류):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정작 연주자나 기획사에는 큰 이익이 되지 못했다. 영상 콘텐츠가 공연장 음악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랜선 콘텐츠’는 향유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홍보 측면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영상제작 업체들만 호황을 누렸다.

허: 온라인 콘텐츠는 실제 공연의 대체재 역할을 하기보다 독자적인 영역으로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오케스트라들이 공연을 실시간으로 단순 중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호기심을 끌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실험에 나선 것은 의미가 있었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꿈의 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공연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공연은 코로나19에 대비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됐는데, 각 연주자들은 화상 화면을 통해 무대에 등장,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줬다. 뉴스1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꿈의 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공연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공연은 코로나19에 대비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됐는데, 각 연주자들은 화상 화면을 통해 무대에 등장,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줬다. 뉴스1


-내한 공연의 빈자리가 국내 연주자들에게 돌아간 측면도 있었는데

류: 평소라면 무대에 서지 못했을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 건 사실이다. 국내 연주자층이 이 정도로 두터운지 처음 알게 된 해였다. 팬데믹이 지속되는 한 한국인 연주자를 외면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허: 무대에서 주요 악단의 부지휘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해였다. 외국인 상임지휘자를 둔 오케스트라의 경우 지휘자가 해외에서 코로나19로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황: 다만 소규모 공연과 달리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경우 섭외하는 지휘자나 협주자가 모두 스타급에 한정돼 있었다.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다. 결국 인지도 높은 소수가 대부분의 대형 공연장을 차지하는 한계가 있었다.

-파행을 거듭했지만 주옥같은 공연도 열렸다

황: 지난 9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의 듀오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이정도 톱 클래스 연주자들조차 코로나를 피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의 아픔이 느껴졌다. 조성진의 경우 지난 리사이틀을 통해 옹골찬 건반 터치 등 더욱 발전한 연주를 볼 수 있었다.

류: 지난 10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들려준 베토벤과 리스트에서는 전류가 흘렀다.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기저에 깔린 에너지가 대단했다. 한국 클래식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허: 여름에 열린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기적과도 같은 행사였다. 코로나가 잠깐 수그러들었을 때 절묘하게 개최됐고, 무사히 끝마쳤다. 원래 봄에 하던 행사였는데 공연에 목말랐던 관객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을 선사해 줬다.


지난 7월 교향악축제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지난 7월 교향악축제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허: 2020년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 베토벤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공연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역설적으로 베토벤 음악이 가장 적게 연주됐던 것 같다. 혁신적인 지휘자 쿠렌치스의 베토벤 내한공연이 무산된 것도 너무 아쉬웠다.

류: 그래도 베토벤 현악4중주를 자주 들을 수 있었고, 좀처럼 공연되지 않았던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가 무대에 올라갔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암흑에서 광명을 지향했던 작곡가의 위로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됐을 것이다.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연계의 과제는

황: 사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가운데 확진자가 나온 사례는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이라면 어렵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정도에서는 공연이 멈춰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무대는 생업의 현장으로서 꼭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공연이 아예 멈춰버린 미국과 유럽의 피해를 보면서 방향을 잘 잡아 나가야 한다.

허: 공연이 무산됐을 때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연주자들의 개런티(연주료) 문제가 화두다. 초청 기획사나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보전해 줄 것인지 계약서에 기준이나 언급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참에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난 10월 국립오페라단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난 10월 국립오페라단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2021년 관객들은 어떤 음악에 주목해야 할까

황: 내년은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서거 50주년이다. 그가 (많은 연주자가 필요하지 않은) 실내악 작품을 다수 작곡한 터라 코로나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의 순기능은 이처럼 지금껏 소외됐던 곡들이 빛을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류: 대중에 친근한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반도네온으로 연주되는 그의 탱고 음악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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