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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입력
2020.12.09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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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일대를 걷고 있는 시민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남산일대를 걷고 있는 시민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0년은 무엇보다도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근래에 없었던 공간적 경험을 한 해였다. 코로나 정국은 그동안 모여야 했던 도시가 흩어져야 한다는 반대 이슈로 전환되는 시간이었다. 과거 도시 삶의 핵심은 많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되었는지가 그 사업의 성패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도시의 밀도는 얼마나 그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가치가 높은가의 평가지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정국은 이러한 도시의 지표를 바꾸어 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키워드가 지난 1년 동안 모든 행위의 기본지침으로 적용됐다. 도시학자들은 앞으로의 도시를 해체와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드론 배달이나 지하 유통시스템을 적용한 도시구조가 앞으로 요구되는 세상임을 주장하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대면과 거리두기가 당연시되는 속에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소외되는 이웃이 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들이 있다. 혼자 지내는 노인들에게 비대면은 끔찍한 체험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두 번 경로당이나 마을 복지관에서 힐링하던 시간을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근 1년 동안을 작은 방안에 갖혀 살고 있다면 그 정신적 체험이 주는 상실감은 사뭇 상상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우리사회는 잘 적용하고 있을까?

비대면의 시대는 마스크로 얼굴의 반쪽을 가린 채 커피숍에 앉아서 긴 대화를 나눌 여유마저도 강탈해가 버렸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서로가 꺼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 결과 근린공원 이용객들이 상당히 늘어나는 현상을 체험했다. 이런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공공공간에 대한 개선과 활성화가 요구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속도의 변화와 경제성 중심의 도시를 만들어 온 결과 벌어진 도시의 밀도는 공공디자인의 공간을 상대적으로 배려하지 못해왔다. 그 결과 따닥따닥 붙은 주거지에는 똑같이 생긴 연립주택들이 줄서 있고 아파트는 담장으로 둘러쳐졌다. 시민들은 집에서 원초적인 문제만을 해결한 후 직장으로 탈출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코로나 상황은 마을 단위의 시민들에게 적정한 허파와 같은 공간을 요구한다. 적정한 간격을 둔 공원과 숲이 시민들과 함께해야 한다. 지금보다는 아늑하게 걷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현상 중 하나는 잔디를 만들어 놓고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세워놓은 잔디밭을 우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벤치에 눕지 말라고 팔걸이를 만들어 놓은 경우도 쉽게 본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여유롭게 볼 기회마저 상실한 삶이다. 우리 도시에 벤치는 일반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인가. 전국 도로를 불법 점유하고 있는 볼라드(자동차 출입 차단봉)들은 더욱 가관이다. 철재나 석재로 만들어져 보행자가 부딪치면 부상을 당할 수준의 볼라드를 쉽게 본다. 시각적으로도 볼품없고 보행 환경에도 도움이 안 되는 형태가 다반사다. 좋은 도시의 기준은 단순하다. 걸어 다니기 편한 도시다. 우리도시는 지금 얼마나 공공적인 보행 환경을 갖추고 있을까? 도시의 공공성은 과연 우리삶의 호흡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을까?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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