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감염자? 줄이기가 가장 큰 원칙
노인층보다 교사 젊은이 먼저인 나라도
정치공학적 접근보다 기준부터 정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코로나19 백신은 누가 먼저 맞아야 정의에 부합할까. 영국이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세계의 고민도 커졌다. 백신 수급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지만, 감염 공포 속에 불쑥 나타난 고민의 공통분모는 비교적 선명하다. 희생을 막을 것인가, 감염을 줄일 것인가의 선택 문제다. 그 양 극단에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가장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세계는 서로 다른 처방전들을 내고 있는데 두 대상 말고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우선 접종하자는 게 대표적이다. 택배 노동자처럼 그들이 없다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먼저 보호받아야 공공선이란 얘기다. 그러나 사회마다 다른 가치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은 노인층의 접종 순서다.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NASEM)의 권고는 접종 순위 맨 앞줄에 의료계와 요양복지시설 종사자를 세우도록 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건져내는 이들이야말로 생명 재킷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데 반대할 명분은 없다. 두 번째 줄에는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높은 젊은이들이 있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보다 높은 전파력을 가진 사람에게 먼저 접종해야 한다는, 2009년 신종 플루 백신 접종의 경험칙에서 나온 것이다. 노인층은 노숙자 수감자들과 함께 그 다음 순위에 놓였다.
트럼프 정부는 치명률이 높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의료인들보다 먼저 맞아야 한다는 입장이긴 하다. 의료인들은 적절한 보호장비를 착용하면 감염 위험이 적기 때문에 굳이 퍼스트 라인에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이지만, 현장 반응은 다르다. 뉴욕주도 노인보다 교사, 화물 운송자, 식료품점 노동자를 우선 접종토록 했다. 사회 필수 인원들이 사회를 보호하도록 우선 배려한 것이다.
영국 프랑스는 노인과 의료인들을 맨 앞줄에 세워 코로나 희생부터 줄이도록 했다. 영국은 백신예방접종합동위원회(JCVI)에서 5월부터 이 문제를 논의, 요양시설 노인을 우선 접종한 뒤 의료진과 함께 고령층부터 순차적으로 접종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12쪽의 해당 보고서는 전체 인구를 노인, 의학적 고위험군, 의료기관 종사자, 일반인, 유색인종으로 분류해 이들에게 과학적 사실과 윤리적 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핀 뒤 순서를 정했다.
내년 2,3월 백신 도입을 시작하겠다는 우리 당국은 1순위 접종자로 전 국민 70%가 넘는 3,600만명을 제시했다. 노인이나 집단시설 거주자, 만성 질환자, 의료기관과 요양 복지시설 종사자, 경찰 소방관 군인 등을 모두 포함시켜 놨다. 제대로 된 고민 속에 우선 순위를 정하지 않고, 안이하게 정치공학적 사고만 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2009 신종 플루 사태 때는 의료기관 종사자와 방역요원, 초중고교 학생 순서로 백신을 접종하고, 마지막 순위에 노인과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배치했다. 신종 플루 감염의 위험성과 차단 효과가 큰 순으로 정한 것인데, 이번 코로나 백신 접종의 경우에도 큰 원칙부터 정해 제시하는 게 맞다.
그리고 코로나 재난은 사회 취약계층에 비대칭적으로 집중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이들이 있고, 열정을 쏟아 볼 기회조차 찾지 못한 이들도 있다.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보는 게 비단 해외의 사례만은 아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보다 불평등이 무섭다고 하지만, 백신 접종에선 이들을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닥잡기 어렵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가 그래도 건강함을 잃지 않은 장면일 것이다. 백신 접종 순서를 다룬 한 외신 기사에서 85세의 노인은 젊은이보다 먼저 맞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고, 자녀보다 우선한 접종 통보를 받는 엄마 간호사는 죄책감에 짓눌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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