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모두 통과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업들은 국내 시장이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놀이터가 되고, 수조원의 비용을 경영권과 소송 방어에 허비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우선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법 개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개정안은 사익편취 규제,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총수 일가가 지분 20%(기존 30%) 이상 보유한 상장 계열사에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정의선 회장과 명몽구 명예회장이 지분 29.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또 다시 ‘일감몰아주기’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2014년 말까지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이 43.39%에 달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및 시행령 개정으로 2015년 2월 정의선 회장 8.49%, 정몽구 회장 4.8% 등 총 13.39%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 바 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두 부자는 또 다시 10% 가량의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이는 결국 향후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분리 선임’, ‘3% 의결권 제한’ 등이 적용되면서 2년 전 ‘엘리엇 사태’와 같은 위기에 더욱 쉽게 노출되게 됐다. 당시 미국의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 사외이사로 추천한 3명에 대한 외국인 주주의 찬성률은 각각 45.8%, 49.2%, 53.1%였다. 만약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태에서 53.1%를 찬성했던 외국인 주주가 감사 선임을 위해 다시 결집할 경우, 이사회 진입을 막기 힘들어 진다.
LG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일찍부터 대응해왔지만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소송 남발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LG그룹 지주회사인 ㈜LG는 최근 보유하던 LG CNS 지분 85% 중 35%를 매각, 지분율을 50% 이하로 낮췄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는 ㈜LG의 지분 46.6%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LG는 수리ㆍ정비(MRO) 기업인 서브원 지분 60.1%를 매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재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곳은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LG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인 S&I코퍼레이션, LG경영개발원 등뿐이다.
하지만 LG전자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벌써부터 소송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집단소송제가 확대 시행되면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SK그룹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특히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로 상향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SK하이닉스를 계열사로 두는 SK텔레콤 중간지주회사 전환 추진 작업이 난항을 겪게 된다.
신설될 SK텔레콤 투자 지주사는 현재 20.1%인 SK하이닉스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SK하이닉스 지분 취득을 6,000만주 이상 취득해야 하는데, 최소 7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법 기준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관련법이 2021년 1월1일 공포되면 1년 뒤인 2022년부터 강화된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가 시행되는 만큼 이 같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년 중 중간지주회사 전환을 마쳐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3%룰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KCGI(강성부펀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의 ‘3자 주주연합’ 간에 진행 중인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 이후 조 회장 측 한진칼 지분율은 47.32%로, 3자 연합(40.41%)보다 훨씬 앞섰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으로 3자 연합측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를 활용한 경영권 공격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수 싸움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 시 조 회장 측 의결권은 18.7%인 반면, 3자 연합 측의 경우 18.9%로 조금 앞서게 된다.
유통 대기업들은 다중대표소송제 리스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모회사 주주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다중대표소송이 도입할 경우 유통 기업이 특히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통업 내에서 시장, 품목, 형태 등에 따라 자회사나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관련 매출액 대비 2%(불공정거래행위), 3%(시장지배력남용), 10%(담합)인 과징금 상한을 2배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각 기업들은 기존 규제법인 유통업법에서 규정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위반 가능성까지 따져봐야 하게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 임원이 국내 기업의 감사위원에 임명돼 회사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게 됐다”며 “미래 먹거리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 경영권 방어와 소송전에 헛심만 쓸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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