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오딧세이' 공연으로 관객 만나는 오르가니스트 박준호
"건반을 치는 순간부터 소리가 소멸하는 피아노와 달리 오르간은 누르고 있으면 음향이 지속되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원함을 들려주는 듯해요. 오르간이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악기는 아닙니다. 연주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미세하고 발랄한 소리도 낼 수 있거든요."
건물 3층 높이와 맞먹는 거대 파이프 오르간을 마주한 오르가니스 박준호(35)는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서있는 여행자처럼 보였다. 그가 오르간의 '스탑(음색을 조절하는 장치)'을 조작하며 건반을 누를 때마다 5,000여 개의 파이프에서 우주가 뿜어져 나왔다. 때로는 천둥이, 또 어떨 땐 새소리가 울렸다. 건반악기지만 관악기에 가까운 오르간은 피아노보다 음역이 넓은 '악기의 제왕'이다.
7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박준호는 "오르간은 소리가 길고 굴곡이 없어 안정적이지만, 또 그래서 늘어지지 않게 잘 끊어내는 주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르간은 건반을 얼마나 적시에 떼느냐에 따라 음악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박준호는 "오르간이 주로 성당이나 교회에 있어서 종교음악을 하는 악기라는 인식이 있지만, 콘서트홀이나 백화점에 있는 곳도 많다"며 "오르간의 힘은 폭넓은 소리들로 다수의 사람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는 여섯살 때부터 쳤던 피아노가 실증 날 무렵 어머니의 권유로 우연히 오르간에 입문했다. 열다섯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오르간 '예술영재 1호'로 입학한 그는 처음부터 열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다만 어느새 오르간과 한몸이 돼버렸다. 세계 최고 대회로 꼽히는 독일 뉘른베르크, 아일랜드 더블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연주력을 입증한 그는 최근엔 모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박준호는 다소 생소한 오르간의 매력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지난해부터 롯데홀에서 꾸준히 열고 있는 '오르간 오딧세이' 공연이 대표적이다. 오르간의 역사와 구조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한편 다양한 곡도 즉석에서 들려준다. 박준호는 "다섯살이 된 롯데홀의 오르간은 화려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도드라지는데, 각 파이프의 소리가 뭉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이는 점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코로나19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다. 우선 22일로 예정된 크리스마스 공연이 취소됐다. 박준호에게 '순례'의 의미가 있는 해외 투어 기회가 사라진 것도 아쉽다. 박준호는 "건물과 함께 지어지는 오르간은 그 시대의 지역적 특색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문화재여서 같은 악기라 해도 어디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불투명한 내년이지만 그는 꿋꿋이 새해 공연 프로그램을 짰다. 내년 2월 24일 박준호는 롯데홀에서 헨델 '시바 여황의 귀환' 비에른의 환상모음곡(작품번호 53번) 등을 들려 줄 계획이다. "관객들이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연주를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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