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 10일 출범
피해자 아닌 과거사위가 직접 입증 책임
사법 구제시 과거사위 보고서 법률적 효력
“이번이 과거사 정리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직권조사를 통해 침묵의 영역을 조명하겠다.”
정근식 제2기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2기 과거사위 출범을 엿새 앞둔 지난 4일 서울 중구 과거사위 출범 준비기획단 사무실과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 건물에서 진행한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2기 과거사위에선 피해 입증 책임이 과거사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한 남ㆍ북협력 사업 추진 의지도 밝혔다. 정 위원장은 “우리 땅에 아직도 북한군이나 중국군 유해가 많이 묻혀 있다. 국군이나 유엔군 희생자도 북한 땅에 많다”며 “과거사 정리는 국가를 넘어서 민족 전체로 동아시아 전체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진실 : "이번이 과거사 정리를 위한 마지막 단계"
-30년 넘게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왔다. 2기 과거사위 출범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88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관련 조사가 첫 시작이었다. 전남 무안 지역 연구를 할 때 처음으로 6ㆍ25 당시 참변을 당한 마을의 실상을 알게 됐다. 1993년 한센병사(史) 연구를 시작하면서 차별에 의해 삶이 어디까지 뒤틀릴 수 있는가를 체감했다. 그 때는 여기까지 올 줄 미처 몰랐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의 학문 연구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많은 뼈를 헤집는 고통을 저에게 털어놔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사 진실 규명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1기 과거사위가 출범할 당시 같이 했던 유족회 분들 대부분이 돌아가셨다. 15만에 다시 시작이다.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다. 우리가 과거에 어려움을 겪은 분들을 위로하고, 평범한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시간이다.”
-한 분 한 분 돌아가시면, 진실을 밝힐 기억도 기록도 찾기 어려워진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도 그렇고 1980년대 국가적 폭력의 시대로 그렇고, 개인이 입은 고통과 피해를 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말씀 하나 하나가 공공의 자원, 인류의 자산이다. 현대사의 경험을 잘 보존해 미래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은 좋은 나라, 품격 있는 나라고 가는 첫 걸음이다. 더 이상 과거가 족쇄가 돼 선 안 된다. 이번이 과거사 정리를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고 법률이 정한 기간 동안 문제들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기 과거사위 때는 직권조사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냉전과 분단의 시기에 겪었던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도 컸다. 과거사위에 신고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후환이 생기지는 않을까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좀더 성숙했다. 여성이나 배울 기회가 없었던 분들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최대한 숙고해서 직권조사를 통해 침묵의 영역을 조명하는 데 노력할 각오다. 여전히 침묵이 지배하고 있는 부분부터 진실을 밝혀낼 생각이다.”
-2기 과거사위 활동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또 있나
“앞서서는 피해자들에게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를 스스로 가져오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그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기 과거사위에서는 위원회가 직접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와 자료를 적극적으로 찾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을 할 것이다.”
◆화해 : "과거사위 활동은 미래 세대를 위한 여정"
-1기 과거사위는 2008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활동 동력이 급격히 상실됐다.
“1기 때와는 정치적 환경이 달라졌다. 지금은 다행히 정부나 정치권이 힘을 모아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물론 여ㆍ야 대표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2기 과거사위 출범을 위한 법 개정 때 야당 김무성 전 의원이 큰 힘을 보태줬다. 이제는 우리사회가 과거사 문제만큼은 털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새로 출범하게 될 과거사위가 앞으로 얼마나 문제를 잘 해결해 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지나간 옛 상처를 들춰내는 것을 불편해 하기도 한다.
“2기 과거사위가 다룰 형제복지원ㆍ선감학원 사건만 해도 진실을 밝혀 내는 데 대한 갈등의 소지가 없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갈등이나 분열의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다. 국가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 과거사위가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과거사 피해자분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남의 일’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과거사 문제가 있던 시절을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사 문제 해결은 중요하다. 새로운 세대가 창의적으로 자신의 상상력대로 우리사회를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과거사의 족쇄를 걷어야 한다. 과거사위 활동은 피해 당사자들, 나이가 많은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여정이다. 미래를 위한 과거사다.”
-과거사가 오늘의 정치 현실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한(恨)'의 정치가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정치는 특히 우리사회 전체를 봐야 하는데, 일부분만 보면서 한의 문제에 집착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한국 현대사 70년 전체를 조망하면서, 여야 진영을 넘어서는 진실의 기초를 놓을 수 있을 때 우리사회는 더 높은 단계로 성숙할 수 있다. 균형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2기 과거사위에 주어진 사명이고 책무다.”
◆치유 : "진실을 대면하고 치유와 화해로 나아가는 경험 나눌 것"
-문 대통령은 과거사위 출범에 처벌보다 진실ㆍ화해를 강조했다.
“물론 피해자들은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를 바란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로 간다면 지금 우리 삶이 과거에 묶이지 않을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유족들을 설득해야 할 부분이다. 공감과 인정이 이뤄질 때 제대로 된 진실규명도 가능하다. 남ㆍ북간, 동아시아 국가간에도 이뤄져야 할 공감대다. 2기 과거사위 활동이 우리 내부를 넘어 남북간 평화를 이끌어 올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국경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해결 할 수 있는 과거사 문제가 있나.
“한국전쟁 때 유해발굴 문제가 그렇다. 우리 땅에 아직도 북한군이나 중국군 유해가 많이 묻혀 있다. 국군이나 유엔군 희생자도 북한 땅에 많다. 남북간 대화가 진전돼 유해 발굴이 이뤄지고 가족 품에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한다. 국가를 넘어서 민족 전체로 동아시아 전체로 해야 할 일이다. 이를 통해 남북 간, 여러나라 간 평화를 진전시켜야 한다.”
-진실 규명만큼 배ㆍ보상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재정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정부도 어떻게 하면 국민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풀어갈까 고민 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게 최우선이고, 이를 위해선 국민적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할 부분이다.”
-과거사 피해자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경북 문경의 과거사 희생자 유족 중 한 분은 평생 나무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 문정현 신부는 나무나 돌에 무언가를 새기면서 평화를 기원한다. 고통의 흔적, 피해의 기억을 새김을 통해 승화시킴으로써 울분을 삭이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일이라고 한다. 국가권력과의 화해만큼 자신과의 화해가 중요하다. 과거사로 피해를 입은 분들만의 일이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과거사위 활동은 진실을 대면하고 치유와 화해로 나아가는 경험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