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예정에 없던 긴급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 내부는 술렁였다. 김 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과오에 '기습사과'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면서다. 실제 이날 오전부터 비상대책위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이 더 지체하지 않고 오늘 사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 강행 처리에 나선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만 집중했다. 짧은 입장문만 발표한 뒤 질문도 받지 않고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날 기자회견을 두고, 결국 대국민사과를 둘러싼 고민의 일단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 위원장 사과에 반발하는 측에서 당초 '디데이'로 삼은 9일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기' 문제를 꺼낸 만큼 이를 의식한 기자회견이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초 2016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던 12월 9일에 맞춰 대국민 사과를 할 의지가 확고했다. 그러나 이날 3선 의원 10여명이 김 위원장을 항의 방문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3선 의원들은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아내는데 당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사과로 혼란을 부추기는 건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고 김 위원장에게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초래한 정국 전반에 대해 얘기를 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나도 그런 중요한 일(본회의)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시기적으로 내가 알아서 잘 하겠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는 하지만동시에 '내용과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는 얘기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사과 시점을 미룰 가능성도 커졌다는게 당 안팎의 전망이다.
다만 '김종인의 사과'를 둘러싸고 노출된 당내 갈등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당 저변에 깔린 이해관계 때문에 단일대오는 고사하고, 당이 너무 쉽게 흔들리는 모습만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들의 존재감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차기 대선주자들도 이번 논란에서 한발짝 떨어져 상황을 관망만 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날 "각 상임위에 들어간 의원들이 여당의 힘자랑에 무너지는 현실과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숫자가 훨씬 적은 데도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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