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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최백호와 김현철의 낯선 조합 "어른의 목소리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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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최백호와 김현철의 낯선 조합 "어른의 목소리 담았죠"

입력
2020.12.09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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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현철(오른쪽)은 최근 발표한 앨범 '브러시'에서 주현미(왼쪽) 최백호 정미조와 함께 작업했다. Fe&Me 제공

가수 김현철(오른쪽)은 최근 발표한 앨범 '브러시'에서 주현미(왼쪽) 최백호 정미조와 함께 작업했다. Fe&Me 제공


'역시 김현철'이라는 탄성이 나올 만하다. 세월의 깊이와 삶의 진폭을 담은 음악이 잠자고 있던 감성을 건드린다. 김현철의 빼어난 프로듀싱 솜씨에 정미조 최백호 주현미 세 가객의 귀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니 4분 안팎의 시간이 스치듯 짧게 느껴진다.

김현철이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세 명의 선배와 함께 만든 미니앨범(EP) ‘브러시’를 최근 발표했다. 한국판 ‘시티팝’의 원조로 불릴 만큼 도회적인 음악으로 정평이 난 그가 ‘성인가요’에 도전한 앨범이다. 성인가요라면 트로트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선 발라드와 보사노바 등을 품은 넓은 의미의 성인가요를 말한다.

지난해 발표한 정규 10집 ‘돛’에 이어지는 새 앨범에는 정미조 최백호 주현미가 각각 부른 곡들과 김현철 자신이 부른 곡까지 4곡을 담았다. 그가 13년 만에 다시 음악을 하도록 불씨를 붙여 준 죠지를 비롯해 박정현 백지영 정인 황소윤 등 후배들과 만든 ‘돛’과 달리 이번엔 선배 가수들과 공동 작업으로 채웠다.

4일 전화로 만난 김현철은 “지난 ‘돛’ 때는 후배들과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며 녹음했는데 이번엔 커피 심부름만 했다”며 껄껄 웃었다. 배우는 마음으로 함께 작업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딱히 성인가요 앨범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콘셉트 없이 음악 하는 저로선 ‘이번 앨범 콘셉트가 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제일 어려워요. 기회가 될 때마다 한 곡씩 녹음해놨다가 모아서 내는 거니까요. 겨울이기도 하니 생각에 잠길 만한 앨범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런 곡들이 몇 곡 있어서 발표하게 됐습니다. (최)백호 형이 부른 ‘우리들의 이별’은 원래 ‘돛’에 넣으려고 녹음한 곡인데 앨범 성격과 맞지 않아 빠졌다가 이번 앨범에 넣었어요.”

가수 김현철. Fe&Me 제공

가수 김현철. Fe&Me 제공


‘브러시’에는 중장년층이 공감할 만한 곡들이 많다. ‘있잖아요 / 나 오늘은 울지도 모르겠어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첫 곡 ‘리마인드 웨딩’부터 심상찮다. 아코디언 연주를 타고 속마음을 꺼내놓듯 노래하는 주현미의 절절한 창법이 감성을 쥐고 흔든다. 그는 “처음부터 주현미를 가창자로 생각하며 작사, 작곡했다”며 “3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나 나중에 함께 한 곡 작업하자는 말을 했는데 뒤늦게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했다.

인생의 황혼녘에 홀로 된 남성의 고독과 슬픔을 어쿠스틱 기타와 트롬본 연주가 위로하는 ‘우리들의 이별’에는 최백호의 진한 파토스가 담겼다. 가수 정밀아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앨범에 담긴 네 곡 중 유일하게 김현철이 작사, 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노래다. 정미조는 가수 양파가 ‘머뭇머뭇’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곡을 보사노바로 재해석한 ‘에쿠트, 라 플뤼 통브(Ecoute, la pluie tombe)’를 불어로 불렀다. 선율은 같지만 편곡과 가사가 달라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진다. 김현철은 “원래 처음 작곡했을 때 불어로 불렸으면 했지만 그 당시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그 당시 생각했던 편곡에 가깝게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철이 부른 ‘너는 내겐’은 그가 ‘포크의 대부’ 조동진을 추종했던 고교생 시절 작곡한 곡이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 아침향기의 노래였으나 '내놓기 부끄러운 습작'이란 생각에 발표하진 않았다. 조동진 생전에 그 앞에서 불렀던 적이 있는데 “야, 그거 내 노래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습작도 내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돛'으로 녹슬지 않은 재능을 과시한 김현철은 '브러시'에 이어 앞으로도 꾸준히 신곡을 낼 계획이다. “왕성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내년 봄엔 다시 시티팝 앨범도 낼 계획이다 “저는 앨범이라고 말하지 않고 ‘증거’라고 말합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죠. 하나라도 더 많이 그 증거를 남겨놓고 가고 싶어요.”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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