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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에 매출 5분의 1로 뚝, 반값 고급화 전략 덕에 극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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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에 매출 5분의 1로 뚝, 반값 고급화 전략 덕에 극복했죠"

입력
2020.12.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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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목 쉐프


이창목(왼쪽에서 세번째)쉐프가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 쉐프는 “코로나로 매출이 급락하던 시기 고객들의 전화에 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매출이 80% 이상 회복됐다. 김광원 기자

이창목(왼쪽에서 세번째)쉐프가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 쉐프는 “코로나로 매출이 급락하던 시기 고객들의 전화에 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매출이 80% 이상 회복됐다. 김광원 기자


"매출이 5분의 1로 뚝 떨어졌어요. 눈앞이 깜깜했죠.”

올 2월 대구가 마비됐다. 코로나19가 폭군처럼 도시를 제압했고 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철판구이집을 운영하는 이창목 쉐프(45)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직원을 줄이고 일주일 정도 문을 닫았다. 2007년에 첫 가게를 폐업시켰을 때의 기억이 악몽처럼 괴롭혔다.

“그때는 수입산 쇠고기를 썼어요. 광우병 파동이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았죠. 한우로 바꿨지만 끝내 매출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오픈한 지 3년 만에 가게를 접고 요식업계를 떠났다. 지인을 통해 중고차 딜러 등의 일을 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일에 매진한 덕인지 얼마 안 가 자리를 잡았지만, 어느 순간 향수병이 생겼다. 요리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문득문득 음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던 기억이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4년 만에 다시 철판 앞으로 돌아왔다.

“전략을 바꿨어요. 이전에는 수입 쇠고기를 쓰는 등 가격에 재료를 맞추었는데 반대로 재료에 가격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한우를 비롯해 해산물 등의 식재료들도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고급호텔과 동일한 재료들이었다. 가격을 무작정 높인 건 아니었다. 고급호텔의 반값 수준으로 책정했다. 이를테면 ‘반값’ 정통 철판요리였다. 철판요리에서 정통을 붙이려면 철판의 두께가 2cm 이상 되어야 하고 해물과 고기 등 코스요리를 소화해내야 한다. 식재료부터 코스까지 정통을 고집했다. 반값 고급화 전략은 보기 좋게 통했다.


이창목 쉐프가 철판에 구운 스테이크를 손님의 접시에 옮기고 있다. 이 쉐프는 철판의 두께가 2cm 이상 되고, 해물과 고기 등 코스요리를 소화해내야 정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원 기자

이창목 쉐프가 철판에 구운 스테이크를 손님의 접시에 옮기고 있다. 이 쉐프는 철판의 두께가 2cm 이상 되고, 해물과 고기 등 코스요리를 소화해내야 정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원 기자


2014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대구에 가게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대구는 정통 철판요리의 불모지로 알려져 있었다. 철판요리에 종사하는 동료들도 “철판요리도 낯선 데다, 아무리 고급호텔의 반값이라지만 그래도 고가인데 손님이 오겠는가”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기우를 날리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원래 철판요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저는 각 테이블을 독립된 공간으로 바꾸고 한 테이블에 한 팀만 받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도록 배려한 전략이었죠. 그런저런 노력의 결과로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매출 3위 안에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손님들이 열광을 했죠.”

단골 손님들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자영업 대란 상황에서 흔들리던 그를 붙들어주었다. 3월 들어 간간이 “예약이 가능한가. 띄엄띄엄 앉아서라도 식사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다. 횃불보다 뜨거운 희망의 불씨였다. 이 쉐프는 “단골 손님들 전화에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창목 쉐프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언젠가는 철판요리, 하면 한국 스타일을 최고로 꼽는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김광원기자

이창목 쉐프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언젠가는 철판요리, 하면 한국 스타일을 최고로 꼽는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김광원기자


현재 매출은 80% 정도 회복했다. 이제는 코로나19로 중단된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철판에 해물과 소고기뿐 아니라 냄비를 올려 탕을 끓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계획이다. 그 다음은 세계화다. 국내 체인을 시작으로 한국식 철판요리의 세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 이 쉐프에 따르면 근대적인 철판요리는 2차 세계 대전 시기 일본인들이 미군들에게 드럼통을 요리해서 대접한 것이 시초였다. 소위 ‘데판야키’가 미국으로 넘어가 현재는 세계에서 미국식 철판요리가 정통으로 통한다. 철판요리가 한창 뜨던 시기, 특유의 성실함과 손재주로 미국에서 도드라진 활약을 펼친 한국인들이 많았다. 현재 한국 철판요리가 결코 만만찮은 실력을 갖추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이 쉐프는 “BTS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처럼 K-푸드의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언젠가는 철판요리, 하면 한국 스타일을 최고로 꼽는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이예주·정유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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