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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지하철 임뱅크먼트 역의 사랑

입력
2020.12.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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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지하철역 승강장의 남편 목소리

런던 지하철 임뱅크먼트역 승강장의 마거릿 매콜롬. 2014년 다큐 'Mind the Gap' 영상. 유튜브.

런던 지하철 임뱅크먼트역 승강장의 마거릿 매콜롬. 2014년 다큐 'Mind the Gap' 영상. 유튜브.


영국 런던의 공중보건의 마거릿 맥컬럼(Margaret McCollum)은 출근길 지하철 북부선 임뱅크먼트역 승강장에서 남편 목소리를 듣는 게 애틋한 낙이었다. "간격이 넓으니 조심하세요!(Mind the Gap!)" 전철 문이 열리기 전후 두 차례 반복되는 안내방송이 2007년 사별한 남편 오즈월드 로런스(Oswald Laurence)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Please" 같은 살가운 말도 없는 사무적인 한 마디지만, 매콜롬에게는 여태 자기를 염려하는 남편의 밀어 같았을지 모른다. "(남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열차를 그냥 보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매콜롬은 말했다.

2012년 11월 1일 '남편'이 사라졌다. 런던지하철 역사 안내방송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1970년대부터 한결같던 로런스의 임뱅크먼트역 안내방송도 기계음으로 교체됐다. 낙심한 매콜롬은 런던교통국(TfL)에 자신의 사연과 함께 남편 목소리를 다시 듣게 해달라는 편지를 썼지만, 여의한 일이 아니었다. 대신 교통국 관계자는 로런스의 목소리를 CD에 담아 매콜롬에게 전했다.

매콜롬은 1992년 모로코 여행길에 로런스를 만났다. 드라마예술왕립아카데미를 졸업해 배우로 일하다 은퇴하고 크루즈 여행사 가이드로 일하던 로런스는 매콜롬이 보기에, 외모도 외모지만 목소리가 기가 막혔다. 둘은 11년간 동거하다 2003년 결혼했고 4년 뒤 사별했다.

한 달여 뒤 새해 출근길에 매콜롬은 역 승강장에서 반가운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사연을 알게 된 교통국 책임자가 디지털 코드를 수정해서라도 원래 방송을 복원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거였다. 그 사연은 2014년 짧은 다큐멘터리로, 2019년 12월 11일 한 네티즌의 SNS로 다시 세상에 온기를 전했다.

런던 지하철 임뱅크먼트역에선 지금도 매일 수백 번씩 로런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데일리메일 기자는 근년 몇 해 동안 매콜롬(올해 만 72세)을 보지 못했다는 지하철 직원의 말을 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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