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독일의 나우루 침공
화학비료가 널리 쓰이기 전, 합성 암모니아가 개발되기 전, 인류 문명이 석유에 버금갈 만큼 의존한 광물자원이 인광석이다. '구아노'라 불리는 인광석은 동물, 특히 군집생활하는 철새의 배설물과 사체가 쌓이고 분해돼 굳은 유기물 자원이다. 로맹가리는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허무의 미학을 그렸지만, 사실 페루는 그 새들 덕에 인광석의 주요 산지가 될 수 있었다.
인광석으로 20세기 풍요의 절정을 누린 나라로는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이 대표적이다. 수천, 수만 년 앨버트로스 등 바다철새들의 서식지로나 알려져 있던 나우루는 19세기 말 방대한 인광석이 발견되면서 영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보물섬이 됐다.
인광석은 식량 생산을 위한 기름진 비료였고, 화약 원료였다. 나우루의 인광석은 남미산보다 순도도 높고 채굴도 쉽고 수송 거리도 가까웠다. 1차대전 후 독일로부터 나우루를 빼앗은 영국은 나우루에 영국인산염위원회를 설립, 1968년 나우루가 공화국으로 독립할 때까지 영연방 호주 등과 함께 인산염을 사실상 독점했다. 1940년 12월 6~8일 나치 독일이 나우루를 폭격하고, 이어 일본이 점령한 것도 섬의 군사 지정학적 가치 못지않게 인산염 때문이었다.
독립 후 나우루는 1970, 80년대 세계 최고의 자원 부국으로 풍요를 누렸다. 1970년 나우루 1인당 GDP는 2,343달러로 한국(279달러)의 약 8.4배였고, 소니 도시바의 일본(2,037달러)보다도 부유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1,700달러를 갓 넘긴 1980년대 초 나우루의 1인당 GDP는 5,600달러가 넘었다. 1만명이 채 안 되던 나우루 국민은 단 한 푼의 세금도 없이 오히려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인광석은 1990년대 말 고갈됐다. 나우루는 금융 조세 피난처로서 자립을 꾀하다 9·11 이후 미국의 금융 보복으로 철퇴를 맞았고, 근년에는 기후 위기 속에 호주의 난민 수용소를 대신 운용해 주며 원조를 받는 처지가 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