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 연합뉴스
개발도상국의 공공부문 개혁을 돕는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두 가지 있다. "이번에 정권이 바뀌어서 위부터 아래까지 공무원이 싹 바뀌었어요"가 그중 하나다.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일이 지연된다면 십중팔구 정권 교체로 공무원이 다 바뀐 것이다. 추진하던 일이 중단되고 새로운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빈자리가 채워지는데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도 넘는다. 그사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려 하지 않는 그네들의 특성상 현상 유지밖에 답이 없다. 그런 그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바로 두 번째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공무원의 신분이 보장된다니 참 부럽군요.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나요?" 우리나라는 헌법 제7조 2항에서 공무원의 신분 보장과 정치적 중립성의 의무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나 역시 개발도상국 공무원들과 일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갔던 점이다.
개발도상국은 정실주의(Patronage)로 인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정권 교체기마다 공무원이 바뀐다. 여기에서 부패와 비효율이 발생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정권과 공무원이 동시에 교체되기도 한다. 미국은 연방국가 수립 후 19세기 후반까지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주요 공직을 담당하는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를 운영하다가 1883년 능력에 따라 공무원을 뽑는 펜들턴법 이후 실적주의가 정착되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이후 행정과 정치는 분리되었고 이 무렵 정치학에서 행정학이 독립하여 하나의 학문이 되었다. 다만 지금까지도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성을 다하기 위해 미국의 고위직 공무원들은 정당의 신조와 정치철학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채운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아마 조만간 미국의 고위공무원 수천 명도 교체될 것이다.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와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이기 때문이다. 행정관료는 전문성을 갖고 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되, 국민으로부터 민주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이 직업 관료를 통제하며 정치적 책임을 다한다.
연말연시 여러 가지 어수선한 뉴스들 가운데 원전 감사 문제로 문서를 파기하고 자료를 삭제한 산업자원부 공무원 두 명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갑자기 불과 몇 년 전 일이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청산 논란에 많은 공무원이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어젠다라고 하면 많은 공무원이 서로 나서서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중요한 국정과제를 맡겠다는 공무원이 많지 않다고 한다. 위계적 관료사회에서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했다가 구속되는 일들이 생기니 누가 나서서 눈에 띄는 주요 정책을 맡으려 하겠는가.
정치적 책임성과 국민에 대한 대응성을 위해서는 행정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적 책임을 다하면서 동시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집권정부의 통치철학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공무원은 정권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실천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행정학자 박천오의 말이다. 딜레마에 처한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성이란 경계 위를 걸을 때 이 말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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