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은퇴 만화가에 위로 대신 아쉬움… 노익장의 일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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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은퇴 만화가에 위로 대신 아쉬움… 노익장의 일본 사회

입력
2020.1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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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새로움’보다 ‘원숙함’  높이 평가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사회 전반에서 원로 ‘현역’들이 안정적으로 대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에서 원로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꼰대’가 되거나, ‘퇴물’ 취급을 받곤 한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노력하고 인내해야 발현되는 경험의 힘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81세 현역 은퇴를 발표한 노장 만화가에 “여기서 멈추다니 아쉽다”

지난 주 일본에서 한 만화가의 은퇴 소식이 깜짝 뉴스로 회자되었다. 1958년 18세 나이로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무려 62년동안 야구 만화를 그린 원로 만화가 미즈시마 신지 (水島新司) 씨가 현역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도카벤>, <아부상> 등 인기있는 정통파 야구 만화를 그린 만화가로, 한국에서도 해적판으로 작품을 접한 이가 있을 듯하다. “앞으로도 만화계와 야구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작별의 말에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딱히 그의 만화를 즐겨 보지는 않았지만 이 은퇴 소식은 내게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은퇴를 발표한 그의 나이가 만 81세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81세라면 자타 공인 ‘인생의 황혼기’, 이미 수십 년 전에 현역에서 물러나 ‘제2의 인생’, 어쩌면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연배다. 그 나이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노익장을 느꼈다. 일본 야구 만화의 살아있는 증인이 은퇴하는 만큼, 야구 만화 팬들이 섭섭함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평소 그와 친하게 지내왔다는 동년배의 만화가는 “최근까지 작품에 몰두했는데 갑작스럽게 은퇴라니 안타깝다”고도 말한다. 무려 60여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어 온 이에게 “할 만큼 했다”는 위로보다도 “여기서 멈추다니 아쉽다”는 것이니 이 역시 뜻밖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소위 ‘관리’로 겉모습은 젊음을 위장할 수 있다 해도 노화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크게 반길 만한 일은 아닐 지 몰라도 거부해도 소용없는 흐름인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젊음과 싱싱함을 상실하는 ‘늙음’의 과정이지만, 달리 보면 나날이 경험과 원숙함을 쌓아가는 ‘성숙’의 과정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이 변화를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 만화라는 젊은이의 장르에서 62년 동안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아 온 만화가의 이야기는 어딘가 마음을 울리는 면이 있다. 반 세기를 넘는 오랜 기간 작가는 곁눈질하지 않고 작품 세계에 몰두했다 (그는 자기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야구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을 뿐, TV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내민 적이 거의 없다). 출판업계는 그런 그를 외면하지 않고 전문성에 꾸준히 투자했다. 독자는 이 만화가의 원숙함에 변함없는 ‘팬심’으로 보답했다. 이를테면 이 만화가의 노익장은 홀로 고군분투한 결과 실현된 것이 아니다. 작가와 독자, 출판계가 삼위일체로 합심해서, 일본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거물 만화가를 키워냈다고 해야 마땅하다.

◇경험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 사회

‘늙으면 감각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되는 한국 사회와 비교하자면 일본 사회는 경험이 풍부한 장년층, 노년층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초고령사회’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연륜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도전 정신과 새로움 역시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적지 않고 정보 통신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비효율성은 대부분의 사회 제도가 고령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쌓은 경험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 새로움을 즉각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분야도 있지만, 오랜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맛’을 낼 수 있는 분야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80대에 은퇴를 결의하는 노장 만화가 이야기 정도는, 흔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이례적이지도 않다. 필자만 해도 종종 참석하는 일본의 한 학회에서 늘 뵙던 M선생님이 떠오른다. 90대 나이로 지난해에 작고하신 선생님은 80대 시절 늘 백 팩을 짊어진 모습으로 학회에 나타났다. 사실 그 학회는 젊은 시절 그의 뛰어난 연구 성과에 힘입어 배출된 기라성같은 그의 제자들이 설립했다. 근엄하게 연단에 올라 기조 연설을 해야 마땅한 석학이었지만,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현역 연구자로서 학회에 참가했다. 백 팩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들고 최근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대학원생들과 격의없이 토론했다. 학문적 전문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솔직한 의견 교환을 방해하는 권위주의는 거추장스러운 법이다. 사회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연구자로서의 전문성을 성실하게 추구하는 그의 열정이 후진들에게는 큰 자극제였다. 경험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는 풍토 속에서 나이와 무관하게 현역으로서 정진하는 열정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본다.

현재 일본의 고령자 집단은 전쟁 이후 급격한 사회 변동과 ‘버블 시대’의 풍요로움을 경험한 세대다.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직후(1947~1948년) 태어난 ‘단카이 세대’ (団塊世代, 덩어리를 뜻하는 한자어 ‘단괴’를 일본식으로 읽은 명칭으로 ‘베이비 부머’를 뜻하는 일본식 조어다)’가 일본 전체 인구 중 가장 두터운 연령대를 구성한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빈곤한 시절에 태어나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낸 주역으로 지금의 젊은 층에 비해 진취적인 태도가 두드러진다. 이제 ‘겨우’ 70대 중반인 이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사회의 원숙한 버팀목이며, 고도 소비 경제와 시민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가 젊은 패기보다 원숙한 전문성을 선호하는 것은, 이들 세대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고령자 인구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은 젊은 세대를 압도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장점인 ‘원숙함’이 젊은 세대의 ‘새로움’보다도 긍정적인 가치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꼰대’ 아니면 ‘퇴물’, 한국 사회를 되돌아 보아야

‘원숙함’이냐, ‘새로움’이냐. 사회적 가치 평가 기준으로 무엇이 우월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81세에 은퇴를 결심한 원로 만화가나, 대학원생들과 동등하게 토론을 벌이는 80대 석학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본 사회는 장시간에 걸쳐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의 장점을 취하는 데에 보다 적극적이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때에는 헛발질도 많다. 하지만, 경험과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에 있어서는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의 원로 ‘현역’들이 안정적으로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원로들은 일찌감치 뒷전으로 물러나 ‘꼰대’가 되거나, 아니면 ‘퇴물’ 취급을 받곤 한다. 정통 멜로 영화로 80, 9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 영화 감독이 58세라는, 일본에서라면 창창한 현역의 나이에 일이 끊겨 우울함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들은 지도 꽤 되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40대는 진지하게 명예 퇴직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하고,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나이가 들면 금세 ‘감각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고도 한다. 이래서야 전문성에서 우러나는 ‘원숙함’이 제대로 설 길이 없지 않은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사실 일본 사회가 변화에 둔감하다는 평가는, 눈이 핑핑 돌아가게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전통과 습관을 중시하는 유럽 등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자면 일본 사회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결코 느리지는 않다. 한국 사회가 오랜 동안 노력하고 인내해야 발현되는 경험의 힘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되묻게 되는 것이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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